[정한용·왕영은의행복한아침편지]‘잔소리쟁이’아빠의내리사랑

입력 2008-04-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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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남편은 딸에게 ‘잔소리쟁이’ 아빠로 통했습니다. 어찌나 잔소리가 심한지 저랑 비교가 안될 정도입니다. 딸이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면, 한 번에 두 가지를 하니까 안 되는 거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조금만 자세가 흐트러져도 허리에 안 좋다고 자세를 고쳐주겠다며 딸애 방을 들락날락거립니다. 한 번은 딸애가 남편이 말하는 중에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남편은 거기에 화가 나서는 “아무리 공부 잘 해도 소용없다. 그 전에 사람이 먼저 돼라”며 일장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딸이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 부녀의 관계는 항상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 했습니다. 매번 남편의 잔소리 뒤에 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건 제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퇴근하며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이 함박꽃마냥 환한 겁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글쎄 딸애가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는 게 아니겠어요? 올 해 대학교 4학년이 된 딸은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한테도 문자를 잘 안 보내는 딸인데, 남편이 문자를 받았다고 자랑하니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분명 딸애가 대학에 합격하고 기숙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아빠의 잔소리로부터 해방됐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저는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자초지종을 물어봤습니다. 남편이 하는 말이 “아, 그 왜, 얼마 전에 화이트데이였잖아? 그래서 내가 초콜릿이며 사탕에 과자에, 피부미용에 좋다는 비타민 씨 듬뿍 들어있는 과일까지 싸서 좀 보내줬거든. 그동안 내가 애한테 깎인 점수가 엄청나잖아. 이젠 딸한테 점수 좀 따 놓고, 화해도 하고 그래야지. 안 그래?” 이러는 겁니다. 이 사람, 저한테는 화이트데이 때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찌나 서운하던지… 알고 보니까 제가 모르는 사이에 딸이랑 아빠랑 쿵짝이 잘 맞아서 엄청 친해졌습니다. 그 날 저녁을 먹고 남편과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딸이 좋아하는 과일이며 음식들을 보더니 “기숙사에서 잘 먹지도 못할 텐데 보내줘야겠다”면서 남편이 이것저것 먼저 집어 듭니다. 딸애가 대학 들어가기 전만 해도 잔소리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딸을 구속하던 남편이었는데… 언제 그렇게 변한 것인지 이젠 남편의 잔소리와 구속이, 딸 챙기기에 바쁜 ‘팔불출’ 아빠로 변하고 있습니다. 한 편으론 제가 모르는 사이에 가까워진 두 사람이 조금은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서먹하기만 했던 이 둘의 사이가 좋아진 걸 보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문자 보낼 줄은 모르고 받아볼 줄만 아는 남편, 오늘도 언제 딸한테 문자메시지가 오나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번에 딸애가 집에 오면 아빠한테 문자메시지 작성하는 법 좀 알려드리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행복한 아침, 정한용·왕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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