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옥의 표정을 그대로 상상할 수 있는 글이 있으니 바로 ‘황인숙’의 수필과 시입니다. 잔인한 4월에 재개봉한 아비정전은 결국 황인숙의 글을 추천하려 한 ‘비기자와 러브레터’의 길고 긴 서막입니다. 황인숙이라는 시인을 떠올리면 아비정전의 ‘장만옥’이 불쑥 겹칩니다.
장국영이 떠난 자리에서 조용히 비를 맞던 장만옥, 그 쓸쓸한 자리의 흔적이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등의 시를 발표한 시인과 겹칩니다.
저는 황인숙 시인의 작품을 97년 ‘나는 고독하다’(문학동네)라는 산문집을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왕가위 영화를 좋아한다는 작가의 언급에 끌려 10년 넘게 꾸준히 그의 작품을 보고 있습니다. 황인숙의 시와 장만옥, 시인의 얼굴이 지금까지도 동일하게 겹치는 묘한 경험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시인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마치 제 자식이라도 뺏긴 양 앙칼지고 오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고양이는 결국 지독한 생명력을 드러냅니다. 시인은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면 ‘밝은 들판을 내딛는 꿈을’ 꾸고 달빛을 받는 은은한 잠자리에서 잠이 들겠다고 말합니다. 쓸쓸하지만 고고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법을 황인숙의 시들이 보여줍니다.
‘추락하는 꿈으로도’ 그리고 따분하고 처량한 꿈으로 얼마든지 삶이 ‘푸드덕’ 거릴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황인숙의 시는 외로움과 생동감이 뒤섞여 ‘잔인한 4월’에 읽기에 그만입니다. 푸른빛이 황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한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겨줄 것입니다.
최근 산문집인 ‘일일일락’(마음산책)은 그가 느낀 일상의 사소한 얘기들을 모은 칼럼집입니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에 도전하는 얘기며 도를 찾는 사람들이 접근한 이야기 등 소재도 풍부합니다.
조금 흥겨운 리듬에 빠지고 싶으신 분들은 최근 산문을 읽으시고, 고독이 극에 달한 분들은 옛 시집과 옛 산문집을 읽는 게 좋습니다. 외로움을 우아하게 견뎌내는 방법이 황인숙의 책에 들어있습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Copyright © 스포츠동아.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