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23개월의 바느질의 달인. 주현미 뺨치는 7살 트로트 신동. 2주 만에 국기 100개를 외운 32개월 천재. SBS ‘스타킹’이 배출한 신통방통한 아기 스타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얼마나 어른스러운가로 경쟁하는 아이들의 세계가 있다면,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바야흐로 얼마나 ‘초딩스러운가’가 관건이다. 아이 같은 어른, 키덜트(Kidult)의 세계는 MBC ‘무한도전‘의 ‘상꼬마 하하’나 KBS 2TV ‘1박2일’의 ‘은초딩’ 은지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덜키드’(Adult-Kid:애-어른)와 ‘키덜트’(어른-아이)의 자리 바꾸기야말로 21세기 대중문화의 트렌드다. 지난날 아이들의 필살기가 순수였다면 오늘날 아이들의 무기는 영악함이다. 김구라의 아들 동현이는 “아빠가 돈 잘 버는 것은 닮고 싶지만 얼굴은 닮고 싶지 않다”고 말해 어른들의 허를 찔렀고, “아빠 빼고 단독 CF를 찍고 싶다”는 돌발선언으로 어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지난날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문턱이 ‘책임감’이었다면, 오늘날 어른에게 최고의 칭찬은 ‘어머, 어쩜 그리 동안(童顔)이세요!’다. ‘무한도전’의 성공전략은 평균연령 33.5세의 어른들이 펼치는 ‘요절복통 재롱 잔치’이다 물론 어린이에게 동요와 만화만을 허용하고 어른에게 밥벌이와 성숙만을 강조하던 지난 날은 숨이 막혔다. 그러나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어른의 단점’과 ‘어린이의 단점’을 합성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동요 대신 대부업체 CM송을 흥얼대는 아이들, 뱃속에서부터 영어 알파벳을 ‘태교’(?)로 흡수하는 아이들은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을 ‘어른-되기의 무한 속도전’으로 도배하는 중이다. KBS 2TV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나영수(신은경)는 지금 ‘지독하게 교활한’, 우리 시대의 한 아이와 피 튀기는 접전 중이다. 낯선 아줌마에게 아빠를 빼앗긴 분노와 친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똘똘 뭉친 소라는 기막힌 이중전략을 구사한다. 어른들 앞에서는 얌전한 요조숙녀로, 아줌마와 독대할 때는 독설과 냉소로 무장한 꼬마 악녀로 말이다. 아이의 이중생활에 기가 질린 영수는 “소라, 손 좀 봐야겠다”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깍쟁이 영수의 무서운 아이 다루기 전법은 의외로 참신하다. “연기하지 말고, 이중 플레이하지 말고, 싸가지 없어도 좋으니 네 맘대로 표현하라.” 소라는 여전히 싹수없고 여전히 재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영수는 상처입어 뒤틀린 아이의 진심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뱃속에 자라는 영수의 아기에 대한 사랑과 전처의 딸 소라에 대한 사랑을 ‘비교’하지 않게 되는 날, 영수와 소라의 진정한 ‘우정’은 시작되지 않을까. 어떤 우정은 모성보다 애틋하다. TV와 책, 대중문화와 문학 사이의 공존을 꿈꾸는 문화, 문학 비평가. 저서로는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등이 있다. C. S. I.는 Culture, Screen And Internet의 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