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만난사람]아!소리없는몸의아우성,홍승엽안무가

입력 2008-06-06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ȫ

몸가는대로,생각나는대로,진동느끼는대로,그렇게그는춤이되었다
“춤꾼들은 어느 순간 몸에 진동이 느껴진다. 첼로의 현을 튕기면 몸통에 진동이 전달되듯 음악이 있으면 더 분명히 나타나고 음악이 없을 때조차 느껴진다.” 이유가 없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도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자기 안의 ‘진동’을 느끼는 것이다. 몸이 가는 대로, 생각이 흐르는 대로 물 흐르듯 몸을 맡기면 결국 원하던 곳에 가 닿았다는 얘기다. ‘댄스 씨어터 온’의 홍승엽(46) 대표가 그렇다. 그는 대학 2학년 애써 누르고 살았던 ‘열’에 몸을 맡겼다. 그것은 춤이었다. 약관이 넘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지만 그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안무가’, ‘최고의 현대무용가’, ‘독창적 안무가’, ‘춤의 철학자’ 등 세간의 호평을 한 몸에 받았다. 경희대학교 섬유공학과 재학 시절 , 고민을 거듭하다 “인생을 후회하며 뒤돌아볼 게 싫어서” 시작한 무용이다. 대학 졸업 후 동대학원 무용학과에 입학했다. 무용 전공 2년 뒤 1984년 ‘제14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 수상, 1992년 유니버셜 발레단 입단, 1993년 ‘댄스 씨어터 온’ 창립 등 굵직굵직한 인생 자취를 그리면서 무용에 인생을 담고 있다. 2008년 신작 ‘뿔’ 공연을 마친 그는 단원들과 함께 중곡동 ‘댄스 씨어터 온’ 작업실에서 현재 싱가포르 아트페스티벌 공연을 준비 중이다. 93년 ‘댄스 씨어터 온’을 만들 당시 ‘직업 단체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10년만 고생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어버렸다. 그래도 단원들이 뚝심 있게 따라와 준 것이 고마울 뿐이다. 한창 연습이 진행 중인 작업실에서 그의 무용 인생을 들어보았다. ○ 홍승엽과 무용의 첫 만남 “계기는 없다. 대개 무슨 공연을 보고, 주변 친척, 지인의 추천이라고 대답하는데, 그런 특별한 계기가 없다. 예술 분야에 관심은 있었다. 집안 형편상 그 쪽으로 가는 것 자체가 지극히 사치였다. 입도 벙긋하기 힘들었다. ‘저렇구나. 저렇구나.’ 단지 재미만 느꼈다. 중 고등학교 때는 미술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형님들이 ‘뉴스위크’나 ‘타임즈’를 봤는데 문화면 ‘사진’을 보는 게 좋았다. 가끔 무용 사진도 나오는데, 여자무용수 말고 남자무용수가 나올 때 그 사진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사진을 방 안 벽에 오려 붙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벽 한 면을 사진으로 도배하게 됐다. 그 때만 해도 내가 무용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수험생활을 치르고 재수도 하고 학교에 들어갔다. 처음 1년 동안은 분풀이하듯이 놀기만 했다. 그 때 가슴 속에 ‘열’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워낙 내성적이라 평소에 쉽게 풀 수 있던 게 아니었다. 예술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을 나도 모르게 누르고 살았나보다.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춤을 추면 잘 할 것 같다. 저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했을 때 내가 그분야에서 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대학교 1학년 말부터 고민을 하고, 7∼8개월 그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무용을 하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 홍승엽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우리는 미(美 )를 계속 창조하고, 기존의 아름다움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빨간 부처’ 작품에서 심지어 ‘똥’이 만들어진다. 똥과 아름다움은 언뜻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으로 들어왔을 때 굉장히 재미있고 통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똥을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부처를 만들고 부처로 다시 흙을 만들고 순환의 과정을 보여줬다. 미와 추의 영역에서 어떤 예술가들은 추의 영역을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예술가의 내공이 단단해지면 공격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관객들도 재미있게 받아들인다. ‘어떻게’ 보여주는가가 중요하다. 청초한 것도 아름답지만 추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 ○ 현대무용을 좀 더 대중이 가깝게 감상할 수 있을까? “작가 의식이 분명한 제대로 된 작품이 있다. 관객이 감상하는 경계는 비슷하다. 방향이 비슷하게 향한다. 문학처럼 명확하지 않을 뿐이지, 느끼는 방향이 비슷하게 향한다. 개개인 감성의 그릇에 따라서는 여러 다른 각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창작하는 사람들이 ‘당신네들 마음대로 느끼시오’라는 식의 자기합리화 그런 게 아니라 ‘핵’이 있는 것이다. 분명히 핵은 있다. 보는 과정에 따라 감수성에 따라 핵을 감싸는 자기 옷이 달라진다. 무용은 기호가 아니다 뉘앙스를 느끼면 된다.” ○ 홍승엽이 생각하는 홍승엽의 색깔 “사람들은 나를 ‘까다롭다’, ‘고집스럽다’, ‘완벽주의다’ 그러는데, 사실 다 틀린 것 같다. 난 실제로 작업 할 때도 완벽하지 못하다. 굉장히 많은 부분을 양보하고 타협하고 포기까지 하면서 만들어갈 때가 많다. 그런 부분에서는 완벽주의가 아니고, 까다롭기는 해도 까다로움 때문에 정체되거나 그럴 순 없다. ‘건방지다’고도 하는데(웃음) 그거는 건방지게 보일 수 있지만 내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다. 가끔 무슨 배짱으로 내 자신을 신뢰할까 신기할 때도 있지만, 깊이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해서 아니다 싶으면 딱 덮기도 한다. 하지만 옳다고 믿을 때는 간다. 다만 나이가 들다보니 조금 겁이 난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할 부분이고 에너지를 집중해서 현재 여건을 업그레이드 시켜야하는데, 제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만약 여기서 중단을 해도 지금껏 해온 과정이 자부심이 있다. 예술가는 자존심밖에 없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