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자신 있게 고른 추천작은 보는 사람에 따라 싸구려, 저질, 변태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B급 좀비 호러 영화다.
피와 내장이 튀고 정육점 고기처럼 시신이 나뒹구는 역겨운 화면. 다리가 잘린 여주인공이 기관총을 의족 대신 무릎에 달고 다니다 좀비를 만나면 쏴대는 모습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작품이다. 바로 ‘플레닛 테러’. 의도적으로 삼류 저질 B급 영화를 지향하지만 감독과 제작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감독은 ‘데스페라도’, '씬 시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즈. 그리고 제작은 2004년 칸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심사위원장으로 심사위원대상작 “올드보이”를 신나게 외쳤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다.
여름 공포영화를 보러 가면 간혹 나왔던 임산부나 노약자가 보면 좋지 않다는 친절한 자막. 하지만 그 경고가 진심으로 고맙거나 마음에 와 닿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플래닛 테러’는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에 맛있게 먹은 점심도 부담스러워지는 지저분하고 저질스럽고 밥맛이 뚝 떨어지는 영화다.
그럼 왜 하필 이런 영화를 감히 추천할까. 눈과 속은 불편할 수 있지만 박장대소가 터지는 시원함에 미국사회를 조롱하는 해악까지, ‘플래닛 테러’는 올 여름 개봉된 영화 중 가장 웃기고 통쾌한 영화라고 확신한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악동인 두 감독은 지난 해 여름 미국에서 각각 ‘데쓰 푸르프’와 ‘플래닛 테러’를 함께 묶어 동시 상영했다. 누구의 장난기가 더 심한지 겨루듯 두 감독은 재기발랄하고 독특한 장면을 선보였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 러닝타임 때문에 국내에서 ‘플래닛 테러’와 동시상영은 이뤄지지 않았고 절대 청소년관람불가한 예고편만 삽입됐었다.
1년 만에 국내에서 홀로 개봉되는 ‘플래닛 테러’는 ‘데쓰 푸르프’ 못지않게 악동기질 다분한 장면으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화끈한 에로틱 장면에 침이 꼴깍꼴깍 넘어갈 때 ‘필름에 불이 타 손상됐다’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악행까지 로드리게즈의 장난은 끝이 없다. 할리우드의 손꼽히는 톱스타면서 특별출연을 자청, 좀비로 변하는 장면을 너무 실감나 역겨울 정도로 표현한 부루스 윌리스를 보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역시 특별출연한 제작자 쿠엔틴 타란티노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몸의 형태 유지도 어려운 괴물인 주제에 주인공 체리를 강간하려고 덤벼대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한다.
내용이나 장면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특히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상대나 부모님, 사랑이 막 시작된 연인들에게 권했을 경우 이상한 시선이나 호된 원망을 살 수 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