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계모임이 있어 한 음식점에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전까지 수다를 떠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습니다. 전날 일이 많았던 저는 조금 피곤했던 터라 몸을 의자 뒤로 기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말고, 무심결에 식탁 밑에 숨겨져 있던 친구들의 발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들 어찌나 예쁜 신발들을 신고 있던지…
잘 볼 줄은 몰라도 한눈에 ‘돈 좀 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신고 있는 지하상가 표 샌들을 보자 괜히 친구들과 비교되는 것 같았습니다. 왠지 초라한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의자 뒤로 발을 숨겼습니다.
그 기분이 계속 돼서 저는 “2차에 가자”는 소리에도 “먼저 간다”고 말하고 모임에서 나와 버렸습니다. 친구들을 뒤로 하고 뚜벅뚜벅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데, 시내 한 복판에는 다들 예쁜 신발에 옷도 잘 입은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냥 편하게 면 티셔츠 하나 걸친 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신세한탄만 하며 집에나 가려고 했는데 웬일인지 제 발은 지하철역이 아닌 인근 백화점의 구두 매장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진열 된 샌들을 한 번 보고는 밑바닥을 뒤집어보고 제자리에 놓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과감하게 신어볼 생각도 못하고 애꿎은 신발만 들었다 놓았다 하니, 매장직원이 “특별히 찾는 디자인이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디자인보다는 가격이 더 중요했던 저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 매장에서 제일 싼 게 얼마짜린지 보려고요”하고 말해버렸습니다.
분명 결혼 전이었다면 이런 소리는 엄두도 못 냈을 텐데… 아줌마가 되고 보니 부끄러울 것도 없었습니다. 끈 하나 달랑 달린 샌들이 뭐가 이렇게도 비싼 건지… 샌들 밑바닥에 붙은 가격표들을 확인하니 ‘억!’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사실 결혼 이후 대형할인마트와 인터넷 쇼핑몰만 자주 이용했습니다. 지금 본 신발들의 가격표에서 동그라미 하나 뗀 2-3만 원 짜리 신발들을 사 신었던 터라 ‘억!’소리가 나올 법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켤레의 신발들을 들었다 놨다 했던 저는 과감하게 여름 샌들 한 켤레를 장만했습니다. 지금껏 여름 샌들은 대충 싼 거 하나 사서 한 해만 신었습니다. 어느 순간 뒤꿈치가 반란을 일으켜 딱딱해지기도 하고, 발가락에 물집이 생겨 고생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껏 맞벌이하며 살았는데, 저도 이런 고급 샌들 하나 신을 만큼 노력하며 살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23만5000원! 저에겐 간 떨린 가격이지만 그래도 집에 와서 신고 거실을 몇 번 왔다갔다 해보니 발도 편했습니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거기다 발톱에 연한 핑크색 매니큐어 까지 바르고 다시 샌들을 신어보니 정말 예뻤습니다. 남편이 “샌들 신고 잘 거냐?”고 그만 벗으라고 놀리듯이 말해도 정말 좋았습니다.
없던 자신감도 생긴다더니, 요즘 제가 샌들 때문에 딱 그런 마음인 것 같습니다∼
대구 달서구|이숙현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