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Black&White]바둑계‘스킨십’이부족하다

입력 2008-07-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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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의 열세 번째 대회가 7월 24일부터 통합예선을 시작합니다. ‘삼성화재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변화와 실험’입니다. 보수적인 바둑동네에 새로운 기전의 틀을 제시하고, 과감한 실험을 거듭 시도해 온 기전이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기사들과 외국 기사들, 그리고 비록 소수지만 선발전을 거친 아마추어 기사들이 나란히 한 무대에서 본선 진출권을 놓고 겨루는 통합예선전의 원조 역시 삼성화재배입니다. 패자지급 방식의 대국료, 2시간 제한시간 등도 삼성화재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에야 유난떨 것도 없어 보이지만 이 모든 것들은 초창기 반대의 여론을 무릅쓰고, 반발의 역경을 딛고 올라 선 선구자적인 결실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삼성화재배는 여타의 국제기전 중에서도 인기가 높습니다. 특히 ‘본선보다 예선이 더 재미있다’라는 소리를 듣는 기전은 아마도 세상의 모든 기전을 통틀어 삼성화재배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삼성화재배를 내년에는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바둑계의 ‘1박 2일’같은 삼성화재배를 격년제로 개최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41년된 왕위전과 19년의 기성전이 올 시즌을 개막조차 못하고 있어 가뜩이나 침울한 가운데 삼성화재배의 격년제 소식은 바둑계와 팬들에게 아쉬움을 넘어 슬픔마저 안겨줍니다. 이처럼 기전들이 정체 또는 퇴보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적인 경제난으로 인해 기업들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진 데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주머니를 열어 기전을 후원하는 후원사에 대한 서비스와 관계형성 등 한국기원의 ‘스킨십’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거대신문사와 방송사가 주최하는 기전들이 폭염속의 엿가락마냥 맥을 못 추고 있는 동안 마이너라고 할 수 있는 케이블 방송사 바둑TV의 경우 방송용 기전들이 편성싸움을 벌일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현실은 이런 생각을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바둑TV에는 각 기전별로 전담 마케터들이 있어 후원사 접촉과 관리가 매우 원활하다고 하지요. 이른바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매체의 파워만 믿고 자리 펴고 앉아 있으면 기업체들이 알아서 돈을 푸는 시대는 페이지가 넘어가도 한참 넘어갔습니다. ‘우는 아이 젖 준다’란 속담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육아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찾아가서 만나고, 논의하고, 바둑과 기전의 장점을 알리고, 안 되면 설득하고, 다시 협상하는 과정에다 인간적인 유대까지 쌓아올리지 못한다면 기전의 내일은 오늘보다 밝지 못할 것임이 자명합니다. 슬픔이 계속되면, 슬픔은 분노가 됩니다. 한국기원과 바둑계를 바라보는 팬들의 그렁그렁한 눈길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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