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소풍날사이다깨고눈물만

입력 2008-11-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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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딸이 소풍을 간 날이었습니다. 아니, 지금은 소풍이 아니고 현장학습이라고 하니까, 현장학습을 갔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김밥도 싸고, 과자도 사서 딸애 가방에 넣어주고 설레는 기분이었습니다. 문득 딸을 보내놓고, 초등학생 때 소풍갔던 생각이 나서 배시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소풍을 못 가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저희 부모님은 아무리 어려워도 소풍은 꼭 보내주셔서 제 위에 두 오빠랑 저, 모두 소풍은 빠지지 않고 잘 다녀올 수 있었답니다. 솔직히 지금이야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다 먹을 수 있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김밥은 소풍 때 아니면 먹기 힘든 음식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소풍날은 곧 김밥 먹는 날∼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소풍날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싸주시고, 삶은 계란도 싸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먼 곳에 떨어져있는 가게까지 가셔서 과자 2개와 음료수까지 사서 가방에 넣어주셨습니다. 그 당시엔 ‘사이다’가 처음 나와서 한참 유행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 사이다는 먹지 않고 도로 가지고 오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왜냐면 저희 남매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약속처럼, 누군가 소풍을 가면, 안 가는 나머지 형제들을 위해 뭐든 꼭 남겨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풍 장소에 가서도 음료수는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 선생님들은 병따개를 들고 다니면서 병을 대신 따주시곤 하셨습니다. 남들이 다 따서 음료수 먹는 걸 보니까 솔직히 유혹도 됐습니다. 거기다 그 날은 산꼭대기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무척 목이 말랐습니다. 친구들은 각자 싸 온 김밥과 과자를 자랑삼아 가방에서 꺼내놓고, 김밥과 사이다를 같이 먹으며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저는 음료수를 전시용으로만 꺼내놓고, 퍽퍽한 김밥과 계란을 꼭꼭 씹으며 천천히 점심을 먹었습니다. 특히 계란을 먹을 땐 정말 퍽퍽했지만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음료수 마실 생각만 하며 꾹 참았답니다. 소풍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올 때는, 가방도 가볍고 기분도 좋았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일찍 집합소에 도착해서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며, 음료수가 잘 있나, 가방을 열어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저는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음료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유리 조각만 남아서 가방에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찐득찐득한 음료수가 가방 전체를 지저분하게 만들어서 가방 안이 정말 엉망이었습니다. 사실 산을 내려올 때, 갑자기 ‘퍽’하는 소리가 들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누가 넘어진 줄 알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들 ‘무슨 소리지?’ 하는 표정만 짓고 넘어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집합소까지 달려왔던 건데, 아무래도 그 때 큰 돌이나 나무에 부딪혀서 제 음료수 병이 깨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없어진 음료수를 보고 너무 속상해서 갑자기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날, 저희 오빠는 일찍 학교 마치고 집에 있었습니다. 제가 울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괜찮다고 달래주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왜 먹으라고 사 준 걸 안 먹고 가지고 오다가 생돈을 날렸냐며 속상해하셨습니다. 그 모습에 속상해서 더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딸, 현장학습 다녀올 때, 혹시 뭔가를 남겨오지 않을까, 남겨온 과자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 엄마가 돼서 좀 유치하긴 했지만, 그런 기대를 해 봤습니다. 인천 연수 | 조경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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