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내바둑을둔다

입력 2008-11-11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



적막을 뚫고 홍성지가 스튜디오의 불빛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텅 빈 바둑판 앞에 앉아 잠시 눈을 감는다. 지금 이 순간, 생애 최고의 무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관중이 자신의 손끝을 주시하고 있다. 심장이 북을 울리듯 쿵쿵댄다. 뇌는 끊임없이 ‘잔잔하라’ 명령을 내리지만 심장을 제어하지 못한다. 폭발할 것 같은 힘이, 열기가 목을 타고 역류한다. 눈을 떴다. 어느 새 상대가 마주 편에 앉아 있다. 국내 랭킹 1위. 아니, 작금의 세계 일인자. ‘넘을 수 없는 벽이지.’ 홍성지는 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선배에 대한 예를 표했다. 돌을 가리니 상대의 흑번. 그가 조용히 우상귀 소목에 첫 점을 놓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에 평정이 돌아온다. 따뜻하고 기분좋은 열감이 가슴에 번진다. ‘져도 좋다.’ 백돌 하나를 들어 화점에 놓았다. 져도 좋다. 이세돌과 싸워 진들, 누구도 뭐라하지 않을 것이다. ‘내 바둑을 둔다.’ 져도 내 바둑을 둘 수 있다면, 사람들은 찬사와 격려를 보내올 것이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미안해 할 필요가 없어진다. 내 바둑의 한계는 내 몸이 알고 있다. <실전> 백1로 다가서면 이후는 외길이다. 다만 백5로 는 수로는 <해설1> 1로 끊기도 한다. 하지만 흑2의 단수 한 방이 꽤 아프다. ‘보는 맛’을 위해 <해설2>를 제공한다. <해설1> 백3으로 잇는 대신 <해설2> 백1로 뚫고 내려가는 수를 떠올리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흑4의 빵따냄이 워낙 크다. 백은 5까지 귀를 잡을 수 있지만 빵따냄에 미치지 못한다. 아니, 이건 백이 망했다. 홍성지의 얼굴에 발그레 화색이 핀다. 이제 이 바둑의 상대는 이세돌이 아니다. 자신의 바둑. 그 한계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글|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