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폐지된 SBS ‘솔로몬의 선택’의 원조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니혼TV의 ‘줄을 서는 법률 상담소’가 최근 돈다발이 만발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캄보디아 학교건설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특집 기획은 연예인, 스포츠스타, 만화가 등 유명인이 직접 그린 그림을 경매에 부쳐 그 수익금으로 캄보디아 어린이를 위한 학교를 세워준다는 취지 아래 올 봄 스타트했다.
지난 11월 23일 방송에서 마침내 100번째 그림의 경매를 진행했다.
100번째를 장식한 주인공은 로커 나가부치 쓰요시. 우리나라 팬들에게는 ‘잠자리’ ‘건배’라는 노래로 유명한 그는 좀처럼 예능프로그램에 외출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스튜디오에까지 왕림해 ‘부동명왕’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출품하며 경매의 열기를 절정에 올려놓았다.
방청석에 앉은 일반인들이 낙찰에 도전하는 형식을 띠고 있는데 스타의 그림 솜씨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앞 다투어 낙찰가를 호명하는 우렁차고 치열한 경매의 순간도 채널 고정의 힘을 발휘한다.
거창하게 공익성을 강조하지 않은 채 웃음과 감동의 균형을 기막히게 잡는 코미디언 시마다 신스케의 물 흐르는 듯한 진행도 부담 없는 감상을 유도하는 힘이다. 23일 이 프로그램은 21.3% 의 시청률로 그 주 예능프로그램 1위를 마크했다.
그럼, 나가부치 쓰요시의 그림은 얼마에 최종 낙찰됐을까. 자그마치 800만엔(약 1억2000만원)이었다. 출품자의 지명도, 그림의 완성도 등에 따라 물론 낙찰가는 높낮이를 보이지만 스타의 그림 한 장에 이 같은 금액까지 오간다는 것이 언뜻 신기하게 다가온다.
야구선수 신조 쓰요시, X-재팬의 요시키 등 굵직한 스타의 참여를 유도한 이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1억6996만4300엔(약 25억원)의 학교 건립 기금을 마련했다. 시마다 신스케가 사전에 방청석을 향해 “이 그림은 비싸게 살 가치가 없음을 명심하라”는 조크를 던질 만큼 간혹 경매는 과열 양상을 띠기도 한다.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을 들으면 경매 참가자들이 다 대단한 재력가인 것 같지만 지극히 평범한 중년 남녀로 구성돼있다는 것도 놀라운 대목.
낙찰된 주인공에게 MC가 몇 마디 질문을 던지는 순서도 있는데 ‘어디에서 오신 무엇을 하는 분이며 왜 이 그림을 선택했느냐’가 물음표의 주요 내용이 된다. 그런데 사는 곳, 직업은 각양각색이지만 ‘왜’라는 대목에서는 ‘팬이니까’라는 단순 명료한 대답이 자주 나온다.
오래된 팬임을 열렬히 고백하며 스타의 그림을 소장하게 된 기쁨을 눈물로 토로하는 낙찰자도 있다.
세계를 뒤덮은 경제 불황의 무풍지대 같은 이 프로그램 속 일본인의 통 큰 스타 사랑과 그것을 견인하는 일본 스타의 파워,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일본 사회의 여유가 낯설면서도 부럽다.
도쿄 | 조재원
스포츠전문지 연예기자로 활동하다
일본 대중문화에 빠져 일본 유학에 나섰다.
우리와 가까우면서도 어떤 때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일본인들을 대중문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