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스물 넷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 때 당시 저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결혼하느라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모두 키워서 대학에 입학시키니 불현듯, 제가 다 마치지 못한 대학공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다가, 지금 일하고 있는 독서지도사 일과 연계돼서 입학할 수 있는 야간대학을 알게 됐습니다.
올해 2008년 봄 학기부터 그 야간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입학할 때만 해도 의욕이 넘쳤는데, 쉰이 넘은 나이에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부하려니, 금방 주눅이 들었습니다. 책만 덮으면 머릿속은 하∼얘 지고, 어려운 용어는 아무리 외워도 외워지지 않았는데, 젊은애들은 어찌나 빠른지, 뭘 해도 저보다 월등히 잘했습니다.
그렇게 부담감을 갖고 치렀던 첫 번째 1학기 중간고사, 당연히 성적은 나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치렀던 1학기 기말고사, 정말 밤을 새며 공부했지만 역시 성적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지난 가을 2학기 중간고사 볼 때는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집에서도 외우고, 학교에서도 외우고, 심지어 시험시간 전까지 책을 펴고 달달 외웠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 뒤의 남학생이 갑자기 제 옆구리를 쿡쿡 찔렀습니다. “왕누나! 그러지 말고 커닝을 하세요. 책상 위에 연필로 써놓으면 교수님도 모르세요” 이러는 겁니다. 저도 대학 때 정말 많이 해봤지만, 지금은 체면이 있지 자식 같은 아이들 앞에서 커닝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책을 봤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그 학생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뱅뱅 도는 겁니다. ‘커닝? 아무리 외워도 기억이 안 나는데, 진짜 그 학생 말대로 조그맣게 적어볼까? 연필로 적고 들킬 것 같으면 얼른 지우면 되잖아’하고 고민 고민 하다가 결국 책상 위에 연필로 조그맣게 잘 안 외어지는 단어들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노안이 와서 이게 작은 연필글씨는 잘 보이지가 않는 거였습니다. 조금만 더 크게 쓰자 조금만 더 크게 쓰자 하다가 종이 울렸고, 잠시 뒤 교수님이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교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험지를 나눠주고, 드디어 제 앞에 오셨는데 금방 안 지나가고 한참을 머뭇거리고 계신 겁니다. 고개를 들어봤더니 제 책상을 뚫어져라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괜히 팔 하나를 늘어뜨리고, 살짝 답을 쓴 부분을 가렸는데, 교수님의 날카로운 눈빛은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정화 님. 죄송하지만 다른 자리로 옮겨주시겠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자식 같은 애들 앞에서 망신살 펼쳤다고 생각하니 너무 당황돼서 제대로 시험을 볼 수가 없는 겁니다.
몇날며칠 공부했던 내용도 하나도 안 떠오르고, 시험 보는 내내, 시험인지 뭔지 빨리 끝내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 날의 그 창피했던 기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돕니다.
12월 10일에 제 2학기 기말고사 시험이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시험이 많아서 세 과목을 연이어서 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중간고사처럼 그런 창피한 일 만들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늙어서 시험 공부하려니 이빨까지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저처럼 나이 들어 공부하시는 분들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멋진 꿈들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직하게! 두 번 다시 커닝 같은 건 안 할 겁니다.
경기 안양 | 이정화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