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따갑고 나른하고…, 그냥….”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인가 보다. 미처 준비하거나 대비하지 못한 채, 사랑은 갑작스레 찾아와서는 또 사라진다. “햇볕이 따갑고 나른”한 일상에 사랑은 그래서 청량제이면서 아련한 추억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운명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추억이 그저 추억에 그친다면, 사랑은 아무런 감정도 아니리라. 그저 좋은 시절이 남긴 좋은 기억일 뿐. 추억의 이름으로 되새기기보다 언제든 또 다른 사랑을 대비하게 한다면, 지나간 사랑은 비로소 온전한 감정이 되며 지나보면 모두 운명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2월 5일 개봉하는 영화 ‘키친’(감독 홍지영·제작 수필름)은 그렇게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해갈 세 남녀의 이야기다. 순수한 여자 모래(신민아)는 어릴 적부터 익숙해져 이제는 일상과도 다름없는 남편 상인(김태우)와 알콩달콩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상인은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를 그만두고 오랜 꿈인 요리사로서 살기 위해 현실로 나선다. 모래는 그런 남편을 사랑으로써 지켜준다. 그런 그녀의 “햇볕이 따갑고 나른”한 일상에 느닷없이 자유분방한 남자 두레(주지훈)가 나타난다. 모래에게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떨림과도 같은 기억을 남겼던 두레는 상인에게 요리를 가르치고 그의 레스토랑 오픈을 도와주기 위해 상인과 모래의 공간으로 스며든다. 모래는 자신도 모르게 두레와 조심스런 사랑으로 빠져들고야 만다. ‘불륜’ 혹은 ‘삼각관계’로 불려야 마땅할 이 같은 설정은 ‘키친’에서는 결코 마땅하지 않다. ‘불륜’이되 그렇지 않은 듯 보이는 마술은 순전히 홍지영 감독의 세밀한 심리 묘사에 근거한다. 제어할 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내밀한 감정을 자연스레 드러내는 데 감독의 재능은 돋보인다. 서로에게 익숙하다 믿었던 사랑이 한 순간에 깨어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허망함의 부질없는 욕망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건 비단 스크린 속 모래와 상인과 두레만이 아니다. 관객의 감성에 와닿는 대사들 역시 그 깨달음을 더욱 절실하게 한다. 파스텔톤으로 담겨진 세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서 제목이 드러내는 바도 심상치 않다. 요리는 상인의 꿈이며 욕망이지만 두레에게 키친은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며 공간이다. 차지하고픈 욕망의 사랑과 그저 ‘쿨’한 감정의 교감으로서 사랑은 늘 그렇게 부딪히나보다. 그 부딪힘의 결말이 다소 진부해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