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완두콩박은도시락덕에부부의정새록새록

입력 2009-06-13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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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나가는 모임 중에, 술 마시고 노는 대신 등산가는 모임이 있습니다. 회비는 모아서 적금 넣고,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한다더군요.

얼마 전에도 거기 간다며 도시락 좀 싸달라고 하길래 김밥 두어줄 싸줄 생각으로 마트에 갔습니다. 장을 보는데 완두콩이 보이더라고요. 왜 드라마 같은데 보면, 연인들이 소풍가서 도시락 뚜껑 열었을 때, 그 안에 완두콩으로 하트도 그려놓고, 이름도 써놓고 하잖아요. 그 생각이 나서 ‘나도 한번 해봐?’하며 완두콩을 일단 샀습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창에 ‘예쁜 도시락 만들기’라고 치고 엔터를 눌렀는데, 정말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도시락 사진이 쫙∼ 뜨더라고요. 저는 그 중에 가장 쉬워 보이는 ‘볶음밥 곰돌이 도시락’을 골랐습니다.

그냥 볶음밥 만들어서, 도시락에 담을 때 곰돌이 얼굴 모양으로 담으면 되더라고요. 그리고 김밥을 곰돌이 주변에 둘러야지 생각하고, 알람을 맞추고 잠을 자려는데 도무지 잠이 안 오더군요. 저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일어나, 새벽부터 도시락을 쌌습니다. 일단 밥에 양파, 감자 다져놓고, 곰돌이 색깔에 맞게 간장으로 볶았어요. 당근은 홍역 앓는 곰돌이가 될까봐 빼놨고요. 그리고 비닐장갑 끼고, 동글동글 큰 동그라미 만들어 얼굴을 만들고, 또 동글동글 작은 동그라미 만들어 귀 두 개를 붙이고, 김을 오려서 눈,코,입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조물딱 조물딱 거려도 이게 보면 볼수록 곰보다는 돼지에 가까운 겁니다. 그래서 눈,코,입 아예 다 떼버리고, 소시지를 잘라서 중간에 구멍 두 개 뻥∼ 뚫어서 코를 붙였습니다. 아주 영락없는 돼지가 되더군요. 그리고 턱 부분에 둥글게 완두콩을 박아뒀습니다. 어느새 이른 아침이 됐는지, 남편이 등산 간다고 일어났습니다. 도시락 만들다가 밤을 꼴딱 새버린 겁니다.

한참 후, 등산을 간 남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야∼ 이게 뭐꼬? 여기 사람들 다 난리 났다∼ 얼라도 아이고 이기 뭐꼬” 하며 기겁을 하더군요. 하지만 한껏 기분 좋은 목소리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정성 대단한 도시락이라며 칭찬을 해줬다고 하더군요. 왜 하필 돼지를 만들었냐고 물어서 차마 곰돌이 만들다 실패했단 얘긴 못 하고, “응 이상한 바이러스 때문에 돼지가 억울할 것 같아서 돼지 좀 사랑하라고 만든 거야∼” 하니까 “근데 와 돼지 목에 완두콩 목걸이고? 내 진주 목걸이는 들어봤어도, 돼지 목에 완두콩 목걸이는 첨이다” 하더군요. “그건 완두콩으로 보지 말고 진주로 봐∼ 진주 목걸이 하나 없는 내가 좀 사 달라고 만든 무언의 압력이야” 하면서 같이 웃었지요. 전화 끊고 꿈보다 해몽이다 하면서 혼자 얼마나 웃었나 몰라요. 저희 남편, 그 날 저녁 빈 도시락 통 가져다주면서 “완두콩 목걸이 한 돼지 아주 잘∼ 먹었다∼” 하고 웃더라고요.

모처럼 저희 부부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남편 제가 싸 준 정성 가득한 도시락 뇌물도 먹었는데 진짜 진주목걸이 하나 사다주지 않을까요? 곧 있으면 제 생일도 돌아오는데 이번엔 그냥 좀 기대가 되네요∼

대구 달서구|이숙현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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