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상기자의와인다이어리]허영만화백,한식과와인의마리아주에도전하다

입력 2009-06-29 17:0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만화 ‘식객’을 통해 허영만 화백은 맛에 대한 특별한 조예를 드러냈다. 우리 전통 음식에 대한 그 만의 디테일한 조명은 한식의 새로운 붐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그런 그가 맛에 대한 또 다른 시도를 진행 중이다. 한식과 와인의 ‘마리아주’(궁합)를 찾는 거다.

허 화백은 LG상사 트윈와인과 함께 지난해 11월부터 매달 1회씩 자신이 선정한 음식과 와인의 완벽한 매칭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즐거운 일이면서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항상 즐기는 음식 위주로 와인을 곁들일 수 있는 문화 조성에 뜻을 함께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맛의 대가인 허 화백이 그동안 몸소 체험한 한식과 와인의 마리아주를 공개한다.

●꼬막과 실레니 피노 그리

꼬막은 아무런 양념 없이 살짝 삶아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입 안에 퍼지는 짭조름함이 식욕을 돋우고 탱탱하게 살아있는 질감이 풍미를 더한다.

꼬막에는 상큼한 소비뇽 블랑과 피노 그리지오를 환상의 궁합으로 치기도 하는데, 뉴질랜드의 피노 그리도 빠뜨리기 서운할 정도로 매칭이 뛰어나다. 특히 클래식한 복숭아 향과 잘 조화된 산도, 긴 여운이 뉴질랜드 피노 그리만의 캐릭터를 잘 살린 와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실레니 피노 그리(Sileni Pinot Gris)’는 은은하게 느껴지는 단맛으로 꼬막의 짭짤함과 기대 이상의 어울림을 보였다.


●굴전과 프리미우스 블랑

굴하면 수천 만 년 전 바다였던 곳이 포도가 자라는 토양이 된 샤블리 와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굴의 비릿함 대신 바다 향을 배가하며 신선한 산도와 풍부한 과일향을 가진 화이트 와인이라면 샤블리가 아니더라도 썩 괜찮은 마리아주를 자랑한다.

보르도에서 날아온 ‘프리미우스 블랑(Premius Blanc)’은 패랭이꽃의 향기와 동시에 자몽의 과일향, 기분 좋은 시트러스 향의 환상적 조화가 굴과 같은 화이트 와인을 필요로 하는 음식들과 쉽게 어울린다.

입 안을 감싸 도는 풍부한 느낌이 음식에 생기를 더하며 사랑스러운 여운이 일품이다. 단, 굴전은 너무 짜지 않게 하는 게 좋을 듯.

●대게와 카트눅 에스테이트 샤르도네

오크 숙성을 거친 화이트 와인은 갑각류와의 뛰어난 마리아주를 자랑한다. 대표적인 오크 숙성 호주 화이트 와인 ‘카트눅 에스테이트 샤르도네(Katnook Estate Chardonnay)’는 숙성 과정에서 바닐라향, 토스트향 등이 더해지는데, 여기에 사과향, 감귤계향, 레몬향 등이 조화되며 적당한 산도까지 갖춰 대게와 제대로 궁합이다.

“이 와인은 밭일 하러 온 아낙네처럼 소박하다. 아낙네의 부드러운 인상을 연상시키는 크리미한 텍스처는 대게살이 입 안에서 녹는 듯한 질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고 허 화백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순대, 머릿 고기와 비냐 마이포 까르미네르 까베르네 소비뇽

다양한 재료가 혼합되어 고소한 맛을 자아내는 순대는 약간 스파이스한 향이 가미된 와인이 지나치게 구수한 냄새를 조절해 즐기기 좋다.

순대의 어떤 속 재료와도 무난한 매칭을 보일 수 있도록 균형감이 뛰어난 와인이면 더욱 금상첨화다. 돼지의 머릿 고기 역시 특유의 냄새로 꺼리는 이들이 많은데, 와인을 함께하면 이를 완화할 수 있다.

부드러운 까르미네르나 메를로 등의 와인 중 비교적 깊이감 있는 와인이 깔끔하게 즐기는 데에는 제격이다. 칠레 레드 와인 ‘비냐 마이포 까르미네르 까베르네 소비뇽(Vina Maipo Carmenere Cabernet Sauvignon)’은 까르미네르를 메인 품종으로 해 매우 부드럽게 순대의 여러 재료들과 혼합되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인심 좋아 보이는 주모’ 같다.

●주꾸미와 바바 로제타

탱탱한 살이 쫄깃하고 부드러운 주꾸미의 신선한 맛을 살려주는 데에는 화이트 와인이 제격이라 여길지 모르나, 의외로 가벼운 로제 스파클링 와인도 뛰어난 궁합을 보인다. 말바시아 품종으로 생산한 이탈리아의 ‘바바 로제타(Bava Rosetta)’는 야생 장미의 은은한 아로마가 주꾸미가 가진 해산물의 향과 맛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입 안을 살짝 자극하는 가벼운 스파클링으로 주꾸미의 먹는 맛을 살려준다. 흔히들 즐겨 먹는 살짝 데친 주꾸미와 주꾸미 회에 특히 잘 어울리는데, 꼬들꼬들 밥알처럼 씹히는 주꾸미 알의 고소함이 장미향, 과일향을 만나 기대 이상의 마리아주를 빚어낸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