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박홍균 PD “‘선덕여왕’뜨는 동안 난 ‘방송펑크’에 떨었다”

입력 2009-12-31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박홍균 PD. 스포츠동아DB

그에게 지난 1년은 희열보다 불안, 기쁨보다 아찔한 순간이 더 많았던 시간이다. 드라마에 시청자들은 환호했고 시청률은 45%까지 올랐지만 정작 연출자인 그는 인기를 실감한 순간이 없었다. 세상사와 담쌓고 오직 촬영에만 신경을 쏟은 까닭이다. MBC ‘선덕여왕’을 만든 박홍균 PD. 그를 2009년이 저물어 가는 12월의 마지막에 만났다. “2년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다가 휴식을 얻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는 박홍균 PD는 “어제 밤에 알천랑과 진하게 술을 마셨는데 이 자유가 정말 내 시간이 맞는지 멍한 상태”라며 멋쩍은 듯 웃었다.


- 사극 연출은 처음인데 신라시대, 여성 드라마라는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

“2008년 3월31일 연출 제의를 받았다. 2월28일에 ‘뉴하트’를 끝내고 불과 한 달 뒤였다. 김영현·박상연 작가를 믿어 잘되면 작가 덕이고 망하면 내 탓이 될게 뻔했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질책은 받지 않을 거란 믿음은 있었다.”


- 현장에서 ‘완벽주의자’, ‘꼼꼼하다’고 소문났다. 특히 연기자들 사이에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오래 찍는다’ 였다.

“그림은 영원히 남으니까…. 배경에 화병을 하나 더 놓는 잠깐의 노력으로 완성도를 살릴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현장에서 ‘화병 놓는 게 뭐가 중요하냐’는 불만이 있었다. 드라마는 허구다. 얼마나 진짜처럼 보이게 하느냐가 연출자의 몫이고 도리 아닐까.”


- 올해 3월 중국 로케로 시작해 촬영장에서 살았던 10개월을 돌이킨다면.

“촬영 내내 ‘이번 주 방송 펑크나면 어쩌지’라는 불안에 시달렸다(웃음). 화요일 밤 9시쯤 그날 방송하는 테이프를 넘기면 ‘한 주 무사히 넘겼구나’ 안도했다. 그리고 수요일 아침부터 또 일주일의 투쟁을 시작했다. 아내가 싸준 일주일치 속옷과 옷가지 가방을 들고 경상도로 충청도로 전국일주를 했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1년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 미실부터 비담까지 히트 캐릭터가 많았다. 유난히 애착이 가는 인물도 있을 텐데.

“미실. 깨지기 쉬운 유리병 같았다. 미실을 만들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릴을 느꼈다.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인데 고현정의 역할이 컸다. 미생 정웅인이나 죽방 이문식은 매회 열신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데도 빠지지 않았다. 연출자로서는 고마운 배우들이다.”


-‘선덕여왕’이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걸 알면 다음 작품에도 써먹어 성공하고 싶다(웃음). 솔직히 밤10시대 사극은 이점이 있다. 사극은 방어적인 장르다. 투자대비 효과가 안정적이다. 히트작을 답습하진 말자는 반성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보면서 질문하고 대답해줄 드라마를 원했고 그걸 사람과 신뢰의 이야기로 풀어간 게 시청자에게 친숙하게 다가선 이유 아닐까.”


- 이제는 밝힐 수 있는, 촬영 중 최대의 고비는.

“하하. 매일, 매주가 고비였다. 전쟁 신이나 화백회의처럼 처음 찍는 장면이 많아 ‘망하면 어쩌나’ 불안했다. 마지막 회는 촬영과 편집이 늦어져서 테이프를 4개로 쪼개 방송이 시작한 뒤에도 테이프를 갈아 끼우면서 방송했다. 사실 그정도면 방송사고 수준인데….”



TIP: 박홍균 PD은 누구?


2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아 밀린 대휴가 90일이나 되는 MBC 드라마국 소속 PD. 2002년 ‘베스트극장’의 ‘신촌에서 유턴하다’로 연출 데뷔. 이후 의학드라마 ‘뉴하트’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따뜻한 성공스토리를 담아 주목을 받았다. ‘뉴하트’를 연출하면서 외과의사들과 드라마PD 모두 “성취감이 큰 직업인데 힘들다는 이유로 꺼리는 풍토가 아쉽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90일 대휴를 한 번에 쓰려고 내년 초 장기여행을 계획 중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