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의 오늘] 1997년 ‘노랑나비’ 이승희 방한

입력 2011-05-09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승희의 누드화보집 ‘버터플라이’. 스포츠동아DB

인터넷이 대중화할 무렵인 1990년대 중반, 뭇남성들의 눈은 충혈됐다. 드넓은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며 그들의 눈을 온통 사로잡은 것은 섹시한 여성들의 몸이었다. 그 핵심에 ‘노랑나비’ 이승희가 있었다.

1997년 오늘, 이승희가 방한했다. 미국 ‘플레이보이’지의 첫 동양인 표지모델로 이름을 얻은 이승희는 그해 4월 자서전 ‘할리우드의 노랑나비’와 누드화보집 ‘버터플라이’를 펴낸 뒤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누드 환향’이라는 표현으로 이승희의 방한 소식은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1996년 가을 ‘플레이보이’를 장식하고 인터넷 누드 사이트가 개설되면서 이승희는 이미 인터넷 스타가 되어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김포공항에는 200여명의 취재진이 나와 경쟁했다. 또 이승희는 지상파 방송은 물론 각종 케이블채널에 잇따라 출연했다. 또 란제리 브랜드 CF모델 계약을 맺는 등 이승희는 고국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8세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승희는 오하이오주립대 의대를 다니다 모델로 데뷔했다. ‘플레이보이’지의 권위(?)에 동양인 첫 모델, 그것도 한국인 모델이라는 점, 나비 문신의 글래머러스한 몸매에서 뿜어져나오는 묘한 관능미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가히 ‘신드롬’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누드모델의 내한에 모든 언론이 뜨거운 관심을 드러내자 그 ‘관음’과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 속에서 이승희는 방한 일주일 동안 수억원의 수입을 챙겨 돌아갔다.

윤여수 기자 (트위터 @tadada11)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