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커버스토리] ‘마이웨이’ 김인권 “日군가 외운 저는 친일인가요?”

입력 2011-12-30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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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인권.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관동군가 부르면 친일인가요? 러시아 군가는 자다가도 불렀어요.”

배우 김인권(33)은 진지했다.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는 표정이다.

김인권은 영화 ‘마이웨이’(감독 강제규/21일 개봉)에서 주인공 준식(장동건)의 가족과 다름 없는 친구 종대 역을 맡았다. 종대는 준식과 함께 관동군(만주에 주둔했던 일본 육군부대)으로 강제 징집돼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리고, 부대가 노몬한 전투에서 패하면서 소련 포로수용소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벌목장의 작업반장이 되어 권력을 손에 넣은 ‘안똔’ 종대는 전쟁을 겪으며 인간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해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김인권은 이를 위해 장동건과 함께 촬영에 앞서 일어는 물론 러시아어, 일본문화 등을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익혔다. 그는 “내 대사는 다 기억난다”고 말했다.

“러시아 군가는 요즘도 심심하면 부르면서 가요. 외운 게 아쉬워서요. 음….” 고민하던 표정의 그는 말을 이어갔다.

“‘마이웨이’를 두고 친일이란 말씀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식민지 시대의 일본을 용서하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피해자가 아량을 보여주는 게 친일은 아니잖아요.”

김인권은 할 이야기가 많았다. “관동 군가를 아직도 기억한다”는 말을 내뱉고 연이어 뜨끔한 마음이 들었다며 ‘친일의 기준’을 되물을 만큼.

준식의 동생 은수에게 수줍게 핀을 선물하던 종대는 소련 포로수용소에서 점점 ‘악마’가 되어 간다. 동료에게 등 돌리고, 일본인 포로들에겐 자비 없는 악랄함을 보인다.

“왜 그 당시 조선 사람을 나쁘게 그렸느냐는 말도 있어요. 하지만 종대의 그런 부분이 응어리진 한풀이 판타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통쾌한 면도 있을 수 있고요. 저와 오다기리 죠 형도 사실 처음엔 서먹했어요. 저 혼자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지금은 정말 친한 형, 동생 사이가 됐죠. 그럼 그렇게 무대인사 같이 못해요. 지금의 일본인들이 당시의 만행을 저지른 건 아니니까요. 물론 좋든, 나쁘든 관심이 있으니까 다그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은 기쁘게 받아드리고 있어요.”

사진제공|디렉터스


그는 한국 자본이 만든, 장동건이 주인공인 ‘한국 영화’라고 거듭 강조했다.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내던 김인권은 잠시 숨을 돌렸다. 장동건과 오다기리 죠를 압도하는 강렬한 연기로 찬사를 받았지만, ‘마이웨이’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그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터였다.

‘마이웨이’은 노몬한 전투, 독소전, 노르망디 해전까지 전쟁 장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촬영은 ‘군대 이상’이었다. 쉬는 날 어울려 술 잔 기우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날들이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이등병 생활”이라고 표현했다.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흙과 돌이 섞인 밥을 먹기도 하고, 포탄이 눈 바로 앞에서 잘못 터져 큰일을 겪을 뻔도 했다. 차기작 미팅을 가서 “눈에 독기가 서려있다”는 말을 들을 만큼 몰입했던 작품이다.

‘전쟁 같은’ 촬영이었지만, 늘 그렇듯 사람은 남았다. 최근 명동의 한 음식점에서 화려한 옷차림으로 포착된, 영화의 홍일점 판빙빙에 대해 묻자 일단 웃었다.

“특유의 자신감이 판빙빙의 매력이에요. 대륙 여자의 호방함이 있어요. 인터뷰 보면 ‘모든 남자를 다 가지겠다’고 하잖아요. 한국어 공부는 물론이고, 사교성도 좋아요. 한번은 촬영 쉬는 시간에 1시간 넘게 친구랑 신나게 통화하는 거예요. 통역 분에게 물어보니까 친구에게 한국 왔다고 자랑하는 내용이래요. 쇼핑할 거리, 맛있는 음식이 많다고. 그렇게 소녀 같은데, 회의할 땐 또 여장부예요.”




문득, 한일 대표 미남 배우들과 김인권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졌다.

“뭐, 아빠들이 모이면 다 똑같죠. 애 키우는 이야기해요. 놀이방, 장난감 이런 거요. 형들에게 아기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 어떻게 할지 비법 좀 전수해줬죠.”

장동건(39)과 오다기리 죠(35) 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아빠 경력은 훨씬 길다. 김인권은 20대 중반,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했다. 그땐 가진 것도, 미래도 확실치 않았기에 아내의 집에선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살림부터 합치고, 아이 셋을 낳아 길렀다. 혼인신고는 했지만, 결혼식은 제대로 올려주지 못한 점이 아내에게 가장 미안했다.

그래서일까. 요즘 첫째 자영이가 연기에 흥미를 보인다며 “재능이 있다면 반대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배우 사위를 데려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답이 나왔다. “그건 좀 생각해봐야 겠어요. 생활 능력이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살펴본 다음에.”

촬영이 없을 땐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자상한 아빠지만, 막상 아이들은 아빠의 영화를 볼 수 없다. “‘마이웨이’는 당연히 안 되고, ‘방가?방가!’는 제가 너무 (김)정태 형한테 자꾸 맞아서 무섭다고 하고, ‘해운대’는 해일이 무서워서…” 이것저것 빼다보니 남는 것은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정도. “OBS 다큐멘터리 ‘라틴아메리카의 소원’ 내레이션을 했는데, 잠도 안자고 봐요. 아빠가 해주는 이야기라고.”

어쩌면, 이 부분이 ‘조폭 마누라’의 ‘빤스’부터 시작해 그동안 김인권이 보여준 코믹하면서 이면에 울분을 지닌 그의 캐릭터들을 설명해주는 지도 모른다. ‘마이웨이’에서 보여준 그의 폭발력도 여기에 있다. 초반 짝사랑하는 은수의 사진을 몰래 훔치고도 모른 척 하는 모습에서 ‘감초 조연’ 정도의 기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점점 그는 모든 기대치를 넘는 장악력을 보여주지만.

“장동건, 오다기리 죠. 외모 콤플렉스도 느꼈죠. 근데, 잘생긴 형들을 어디 한두 번 봤어야죠. 나중에 되면 다 초월해요. 전 그 어떤 배우를 봐도 질투해요. 하지만 저만이 차별화된 부분이 있고 할 역할이 있잖아요. 더딘 대신에 지그재그로 성장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김인권의 활약은 내년에도 이어진다. 최근 설경구, 손예진, 김상경 등과 함께한 재난 블록버스터 ‘타워’의 촬영을 마무리했고, 1월 중순 부터는 ‘방가?방가!’의 육상효 감독과 ‘구국의 강철대오’ 촬영에 들어간다. 1985년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을 다룬 코미디로, 김인권이 주연이다.

“연출을 생각한 적도 있는데, 육상효 감독님과 창작에 대한 고민이 잘 맞아요. 계속 잘 갔으면 해요. 그러려면 ‘구국의 강철대오’가 잘되어야죠. 항상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찍어야죠.”

그는 ‘마이웨이’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부끄럽지 않은 영화입니다. 편견으로 놓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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