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자’ 정승혜가 그립다..3주기, 추억 그리고 영화의 꿈

입력 2012-05-18 1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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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자 재단이야!”

17일 저녁 서울 충무로의 한 돼지 통고기집. 돼지갈비와 통고기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든 이들은 알싸한 소주 한 잔에 빈 속을 채우며 익어가는 고기가 뿜어내는 연기 속에서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고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였습니다.

통고기집은 고인이 생전 자주 찾던 곳이었고, 모여든 이들은 정 대표를 추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날은 고인이 세상과 이별한 지 3년을 맞는 날이었고, 고기를 굽는 이들은 영화로 먹고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전직 영화 마케터도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고인을 추모하고 추억하며 마치 숱한 영화 관계자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을 정 대표와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었습니다.

정 대표는 스물네 살이던 1989년 충무로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무려 800여편의 영화 카피를 썼습니다. 촌철살인의 재치 발랄한, 때론 발칙하기까지 한 카피는 ‘명카피’의 교과서였습니다.

생전의 고인과 이런저런, 깊거나 짧은 인연을 맺었던, 이젠 마흔줄이 됐거나 이미 40대 중후반이 된 채 고기집에 모여든 사내들은 ‘쎈 놈만 살아남는다’(공공의 적), ‘꿈에서 해도 죄가 되나요?’(몽정기), ‘결혼만 하면 할 줄 알았다’(어린 신부), ‘양다리는 부러운 짓이다’(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 고인이 남긴 명카피를 되뇌며 킥킥거렸습니다.

고인은 배우도, 감독도 아닌 사람이 관객에게까지 이름을 알릴 만큼 스타이기도 했습니다.

정 대표는 “재미있게 살자”, “10분 일하고 50분 놀자”고 말하며 자신도 늘 즐겁게 일했고, 깔깔거리는 통쾌한 웃음으로 충무로 관계자는 물론 관객들까지 맞아주었습니다.

명카피의 실력과 언제나 발랄했던 웃음, 누구도 내치지 않는 따스한 인간적 면모는 모든 영화마을 사람들이 생전 고인을 찾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의 신산한 일상을 위로해주고 서로 어깨를 겯던 영화사 씨네월드 사무실은 그래서 늘 ‘놀러오는’ 사람으로 북적였습니다.

그 숱한 ‘팬’들 사이에서 즐거워하면서도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

생전 영화 인생을 함께 한 이준익 감독, 제작자 타이거픽쳐스 조철현 대표와 함께 ‘라디오스타’를 만들던 중, 대장암이 발병해 결국 3년 동안 암세포와 힘겹고 고통스런 싸움을 벌일 때에도 고인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마을 사람들도 그런 고인을 배려하며 늘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만났고 함께 일했습니다.

이날 한 제작자는 말했습니다.

“승혜는 정말 많은 영화인들의 멘토였다. 특히 여성 영화인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이 자리의 홍일점이었던 전직 마케터는 “그렇다. 나 역시 정 대표를 꿈꾸며 영화일을 시작했다”고 화답했습니다.

허름한 호프집으로 옮긴 이들은 기둥에 붙은 거울에 생전 정 대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붙여놓고 자리를 이어갔습니다.

어느새 이야기는 ‘암사자 재단’으로 이어졌습니다.

문득 술 한 잔 나누다 정 대표를 떠올렸던 이날 모임의 ‘발기인’은 “내년부터는 매년 정기적으로 모이자”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추모위원회?”

“아니! 그런 거창한 거 말고 그냥 우리끼리 승혜 누나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런 자리지, 뭐!”

“그래, 그래!”

그러다 누군가 “정승혜 장학금을 만드는 거야. 십시일반 작은 돈이라도 모아서 영화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승혜 장학금 나온다고 기사 쓸까?”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한바탕 박장대소한 뒤 조금은 진지하게, 또 조금은 설레는 표정으로 ‘암사자 재단’을 운운하게 됐습니다.

‘암사자!’

고인의 생전 이메일 아이디가 바로 ‘암사자’(amsaja)였습니다.
암사자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정 대표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지요.

“그럼, 아예 재단을 만들자. ‘암사자 재단!’ 재단 이사장은 OOO 형님이 맡으시고, 사무국장은 당신이 해!”

“그래, 좋다. 그리고 내년엔 정승혜의 ‘가족’인 이준익 감독, 조철현 대표을 초대하자.”

누군가는 정 대표를 떠올릴 수 있는 물건을 하나씩 들고 만나자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고인이 사인을 하며 건넨 저서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정 대표에 이어 영화사 아침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이정세 대표가 한 마디 했습니다.

“난 빈 손으로 와도 되겠네. 내가 기념품이야!”

일행은 또 한 번 박장대소했습니다.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런 농담 아닌 농담으로 마침내 가슴 설¤습니다. 그리고 정 대표가 마련해준 자리에서 이들은 새로운 영화의 기운과 꿈을 새삼 되찾아가는 듯했습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호프집 한 켠 거울에 붙여놓은 사진 속에서 정 대표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자정을 넘긴 시각, 호프집을 빠져나온 이들은 정 대표가 ‘가족’인 이준익 감독, 조철현 대표 등과 함께 아옹다옹 영화 살림을 꾸려간 씨네월드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서로 낄낄거리고 히죽대며 건물 현관의 계단에 올라선 중년의 이들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 순간,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플래시 불빛은 이들이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영화의 꿈을 정 대표가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정승혜 대표가 그립습니다.

스포츠동아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tadad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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