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페라의 유령’ 브래드 리틀 “몸이 부서질 때까지 ’팬텀’이고 싶다”

입력 2014-05-01 2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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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어설프지만 또박또박한 한국말 인사가 인상적이다. 뮤지컬배우 브래드 리틀(50)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놀라웠다. 팬에게 사인을 해주며 팬의 이름을 삐뚤빼뚤 서툰 한글로 적었다. 그는 “의미는 잘 몰라도 읽을 줄은 안다”며 기자의 명함에 적힌 글을 차근차근 읽기도 했다.

이런 그의 한국을 향한 사랑은 더욱 커질 것 같다. 현재 브래드 리틀은 대구에서 ‘오페라의 유령’ 공연 중이다. 서서히 마지막 공연이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공연에서 기립 박수를 받은 그였지만 대구 관객들의 반응은 놀라울 따름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대구 관객들의 반응에 놀랐어요. 보수적인 성향의 도시라고 들었거든요. 프로덕션에서도 관객들의 반응이 조금 다를 수 있다고 언급을 해줬어요. 그런데 막상 오니 다르더군요. 기립박수도 쳐주고 열광적이에요. 저도 많이 놀랐어요.”

1986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2011년 25주년을 맞아 월드투어 공연을 하던 중 올해 대구를 찾았다. 2012년 서울 공연 후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한 나라의 두 도시를 방문한 게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없던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브래드 리틀은 “프로덕션이 방문할 도시를 선정할 때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오페라의 유령’팀이 그 만큼 한국 관객을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라고 답했다.

배우에게 25주년은 어떤 의미일까. 전 세계적으로 ‘팬텀’을 2000번 이상 공연한 단 4명의 배우 중 한 명인 브래드 리틀 역시 이번 공연은 더욱 뜻 깊다고 했다.

“25주년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세계 각지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는 증거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배우인 저도 이번 투어에 참여할 수 있게 돼 영광이에요. 오랫동안 팬텀을 해왔지만 25주년을 맞이할 때까지 이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몰랐으니까요.”

브래드 리틀이 올해로 ‘오페라의 유령’ 무대에 선지 약 17년이 됐다. 그에게 첫 무대가 기억나는지 물어보니 “어제인 듯 생생하다”며 1997년 무대 뒤에 서서 떨고 있던 자신을 회상했다.

“무섭고 떨리고 흥분되고…. 첫 공연은 총알을 쏜 듯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어요. 뭔가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 그냥 끝나버린 듯한 기분이었죠. 차츰 무대에 적응하며 연기를 즐기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도 당장이라도 ‘팬텀’이 될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누구나 한 가지 일을 오래하면 가끔은 짜증이 나고 싫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희한하게도 10년 이상 팬텀을 하며 지겹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팬텀이라는 캐릭터 자체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요. 사람이 사랑을 하며 로맨틱해지기도 하고 질투에 눈이 멀어 분노하기도 하지 않나. 팬텀의 감정은 강아지와 같은 포근함과 동시에 고양이의 날카로움을 지녔어요. 게다가 격정이기도 하니까 연기를 하며 지루할 틈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없어지지 않은 매력을 느껴서일까. 브래드 리틀은 당분간 ‘오페라의 유령’을 떠날 생각 이 없는 것 같다. 이미 ‘지킬 앤 하이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레미제라블’ 등 명실공히 최고의 뮤지컬을 해왔기에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채우기보다 자신이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드는 듯 했다.

“몸이 부서질 때까지 팬텀을 하고 싶어요. 하하. 배우는 늘 선택받는 직업이라 제작사가 해고하면 못 하는 거죠. 그런데 팬텀의 매력 중 하나가 나이에 제한이 없는 역할이라는 점이죠. 60~70대가 되더라도 다양한 팬텀을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 나이가 들어서 제가 또 어떤 색의 팬텀을 연기할 수 있을지 스스로 기대가 돼요.”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질문을 벗어나 브래드 리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수십 년간 전 세계를 오가며 공연을 해왔던 그가 느꼈을 위기나 공허함은 없었을까. 이에 대한 물음에 그의 답은 차원이 달랐다. 얻은 것이 있으면 버릴 것도 있는 법. 브래드 리틀은 배우라는 옷을 입기 시작했을 때부터 일반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버린 것 같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성격이 긍정적이라 그럴 수 있겠지만….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로워한다면 배우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만큼 마음가짐이 필요한 직업이죠. 배우는 오히려 무대에 서지 못 할 때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 브래드 리틀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배들에게도 뼈 있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오페라의 유령’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가 ‘네 영혼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라’(Let your soul take you where you long to be)예요. 마음 속 열정을 갖고 소신 있게 자신의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언젠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거예요.”

그는 마지막으로 “배우 생활 이외에도 후배를 양성할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이 시발점이 될 것 같다는 것. 현재 그는 국내 뮤지컬 산업의 동향을 살피며 이리저리 알아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 뮤지컬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곧 동양의 브로드웨이가 될 거란 생각을 해요. 잠재력 있는 학생들을 서양과 동양의 방식을 섞어 가르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의 한국 뮤지컬이 기대됩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설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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