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올해 20주년인 부산국제영화제 지원액을 대폭 삭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영화계는 영화제의 지난해 세월호 관련 ‘다이빙벨’ 상영 이후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부산시의 사퇴 권고 등 ‘외압’의 연장선으로 보고 영진위를 비판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부산의 대학교수들도 20일 부당하다며 영진위 조치의 철회를 요구했다.
1991년 오늘, 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가슴에 돋는…)의 제작자 겸 연출자 홍기선 감독이 영화진흥공사(영진공, 현 영진위)의 영화 ‘살어리랏다’ 제작비 지급을 금지해 달라며 가처분신청을 냈다. 영진공이 5월4일 5000만원의 사전제작 지원작에 영화를 선정했다 이틀 만에 번복, ‘살어리랏다’를 대신 꼽은 데 대한 법적 저항이었다.
영진공은 당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비황’ ‘명자, 아끼꼬, 쏘냐’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과 함께 ‘가슴에 돋는…’을 지원작으로 선정했다 ‘살어리랏다’로 대체했다. 홍 감독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1989년 16mm 영화 ‘오! 꿈의 나라’를 문화부에 제작신고하지 않은 채 상영해 영화법을 위반, 1심에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제작자로서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홍 감독은 항소한 상태였다. 영화계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화부가 제작자 자격부여를 거부하는 건 지나치다”며 반발했다. 문화부는 8일 홍 감독이 대표인 제작사 영필름의 제작신고필증을 뒤늦게 발급해 또 논란을 빚었다. 사태는 확대됐고 한국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회는 “정치적인 탄압”으로 이를 규정하고 규탄대회를 열기까지 했다. ‘오! 꿈의 나라’와 관련해 “정부의 불편한 심기”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이었다.
끝내 ‘가슴에 돋는…’에 대한 영진공의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홍 감독은 이를 완성해 이듬해 11월7일 개봉했다. 영화는 1990년 원명희 작가의 소설 ‘먹이사슬’을 모티브 삼아 일명 ‘멍텅구리배’(새우잡이배)에 끌려간 선원들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했다. 지금은 SBS ‘아빠를 부탁해’로 새삼 시선을 모으고 있는 조재현이 주연했다.
홍기선 감독은 모든 논란과 관련해 “작품으로 말하겠다”고 밝혔다. 영화는 1993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의 영평상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홍 감독에게 안겼다. 조재현도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한 최근 논란이 전혀 놀랍게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