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김형곤, 개그맨 첫 ‘빅쇼’출연

입력 2015-07-27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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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7월 27일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KBS 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민상토론’에 제재를 가했다. 6월24일 방송분이 특정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시청자와 방송가는 메르스와 관련한 정부의 허술한 대처를 풍자한 내용 때문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으며 논란을 이어갔다. 뒤이은 ‘민상토론’의 결방은 이 같은 의심을 더욱 짙게 하고 말았다. ‘민상토론’은 여전히 방송가의 정치풍자 개그를 만드는 것이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1996년 오늘, 개그맨 김형곤(사진)이 KBS 1TV ‘빅쇼’ 무대에 섰다. 대형 가수들의 무대로만 인식된 이 프로그램에 개그맨이 나선 것은 김형곤이 처음이었다. 김형곤은 이날 방송에 ‘개구백서’(開口白書)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개그’의 동음어로 들리는 한자어를 활용해 “열린 입을 통해 세상사의 모든 이야기를 밝힌다”는 취지였다.

김형곤은 이 무대에서 신랄한 풍자개그를 선보였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등이 붕괴하는 등 대형 사건사고가 이어지던 당시 김형곤은 사회현실을 둘러싼 다양한 상황을 풍자해 무대 위에 펼쳐놓았다. 그 핵심은 정치상황과 정치인을 겨냥한 정치풍자 개그였다.

김형곤은 이미 1980년대부터 이 같은 풍자개그를 펼쳤다. 1987년 KBS 2TV ‘유머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그 대표적인 무대였다. “잘 돼야 될텐데” “좋습니다” 등 유행어를 낳은 이 코너에서 김형곤은 비룡그룹의 회장으로 등장해 재벌그룹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를 통해 권력을 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후 ‘꽃피는 봄이 오면’ ‘탱자가라사대’ 등 많은 코너에서 풍자의 통쾌한 웃음을 전했다.

김형곤은 동국대 국어교육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0년 TBC 개그콘서트에서 입상하면서 데뷔했다. 1982년 KBS 2TV ‘젊음의 행진’에서 요리연구가 이종임 씨를 흉내 낸 ‘돌찌개’ 코너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공포의 삼겹살’로 불리며 인기를 모았다.

코미디 전용 레스토랑인 코미디클럽을 운영하며 연극과 영화 등에서도 활약한 그는 그러나 더 이상 그 통쾌한 풍자의 웃음을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2006년 3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나이 불과 47세였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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