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의 주인공 송강호.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가 이번에는 일제강점기 친일파 경찰로 나서 험난한 시대를 살다간 입체적인 인물을 완성했다.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아픔의 시대에도 ‘희로애락’ 존재
영화 속 유머는 계산없이 나온 것
다시 찍고 싶은 영화요?
전도연과 함께 사는 ‘밀양’ 2부
거두절미, 관객에 가장 큰 신뢰를 주는 배우를 단 한 명 뽑으라면 그 자리는 송강호(49)의 몫이다. 인기의 온도로는 하정우, 강동원 등 스타 후배들에 다소 밀리지만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에서는 이견을 갖기 어렵다.
송강호가 영화 ‘밀정’(제작 워너브러더스코리아)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친일파 경찰이다. 그동안 ‘악역’의 표상처럼 그려진 캐릭터도 그가 하면 다르다. 나라를 등지고 일본에 충성하는 단편적인 인물이 아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한계를 뛰어넘은 송강호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값을 스스로 증명한다.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꾼다”고 했다. 영화를 통해 새 세상을 그리고 싶다는 뜻이다.
“‘밀정’의 방향은 선과 악의 구분처럼 이분법적인 역사관이 아니다. 붉지도, 검지도 않은 색이다. 좌절의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이 겪는 현실적인 고뇌와 갈등을 조명한다. 시선의 각도가 새로운 영화다.”
상영시간은 총 2시간20분. 관객을 한 자리에 붙잡아 두기에 다소 긴 시간이다. 진중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에 ‘쉼표’를 찍는 존재는 송강호다. 뜻밖의 유머가 곳곳에 포진했다.
“계산한 것은 아니다. 하하! 사람 사는 데는 희로애락이 있지 않나. 아무리 기뻐도 우울한 구석이 있듯이. 웃음이 터지는 것도 의도라기보다는 자연발생적인 일이다.”
‘밀정’은 스파이 영화다. 무장 독립운동을 하는 의열단과 이들을 좇는 일본 경찰의 대치, 그 싸움에 관한 정보를 빼내는 밀정이 암약하는 시대를 그린다. 송강호는 의열단의 포섭 대상이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외형적으로 일본 앞잡이처럼 보여도 사실 처음부터 마음에 소용돌이를 겪었다. 그건 김지운 감독의 연출 의도이기도 하다. 얄팍한 인물이 만드는 낮은 세계가 아니다. 세련된 방식으로, 아픈 시대의 고통을 더 깊게 느끼게 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송강호는 영화 말미 대단한 결심으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목숨까지 내놓고 실행하는 대담한 모습이 뭉클하다. 만약 실제로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와 똑같다. 그게 사람 아닌가. 인간적인 사람.”
영화 ‘밀정’ 송강호.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 다시 찍고 싶은 영화 ‘밀양’ 2부
1989년 연극 무대에 처음 올라 연기를 시작한 송강호는 30년 가까이 배우로 살고 있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단역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지 이제 20년이 됐다. 대부분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돌아보면 “연기를 관두고 싶던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연극을 할 때였다. 두 번 정도 위기를 겪었다. 그 땐 누구나 힘든 시기였지 않나. 후에 영화에 출연하고 다소 풍족해졌다고 해서 왜 힘든 시기가 없었겠나. 배우로 사는 내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다. 마라톤 주자와 비슷하다. 길게 보고 있다기보다는, 크게 생각하려 한다.”
돌아보면 다시 찍고 싶은 영화도 떠오른다. 2007년 이창동 감독과 함께 한 ‘밀양’이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밀양’ 2부는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신애(전도연)와 같이 살게 된 이후의 이야기, 그 상처가 전부 치유되지 않은 상황을 그려보면 어떨까 상상해봤다.”
쉼 없이 영화에 참여하고, 최근 들어 그 활동의 속도를 더 내는 송강호는 현재 영화 ‘택시운전사’ 촬영에 한창이다. 이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영화 ‘제5열’도 시작한다. 배우로 바빠질수록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줄어든다. 그 역시 ‘바쁜 가장’이다. 축구 선수인 아들(연세대 2학년 송준평)의 경기도 마음껏 챙겨보지 못하는 아빠다.
“배우라는 특성상 못하는 일이 많다. (아들)경기장도 자주 가지 못한다. 부상을 당하고 재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많이 안타깝지만 챙기는 일은 주로 엄마가 한다.(웃음)”
아내는 여전히 송강호에게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존재”이다.
“사랑이 깃든 (가족의)평가는 큰 도움이다. 20년 지기 김지운 감독과 ‘밀정’을 함께 한다는 소식에 아내가 누구보다 좋아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