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수라’. 사진제공|사나이픽쳐스
후반부 장례식장 아귀 다툼 압권
지옥 문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일까. 목적은 다르지만 품고 있는 욕망은 같은 남자들이 한 데 엉켜 지옥으로 치닫는다. 폭력과 배신, 암약과 살인이 난무하는 세상의 단면이 영화 ‘아수라’(제작 사나이픽쳐스·28일 개봉·사진) 안에서 펼쳐진다. 보는 내내 긴장을 놓을 틈 없이 휘몰아치는 영화다.
정우성과 황정민, 주지훈과 곽도원, 정만식 등 개성 강한 배우들이 합작한 ‘아수라’가 21일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하반기 한국영화 흥행 판도를 가를 기대작으로 꼽히는 작품. 하지만 애초부터 대중의 마음을 전부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버린 듯, 영화는 남성 관객이 더 열광할 만한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원빈의 ‘아저씨’, 최민식의 ‘신세계’를 잇는 ‘본격 남성 누아르’가 또 한 편 탄생했다.
‘아수라’는 불교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 싸움과 다툼을 의미하는 상징어로도 통한다. 영화는 제목이 가진 의미에 충실하다. 도처에 존재하는 악인들의 모습이 마치 먹이사슬처럼 얽힌다. 선과 악의 대결, 권선징악의 메시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는 재개발을 앞둔 가상의 도시가 배경이다. 온갖 악행으로 권력을 취하는 시장(황정민), 그의 심부름꾼인 형사(정우성), 시장을 좇는 검사(곽도원), 시장의 또 다른 하수인(주지훈)이 서로의 욕망으로 얽혀 침몰하는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폭력의 세계에 물든 한 사내(정우성)가 자기가 저지른 폭력에 의해 괴멸하는 이야기”라며 “액션 역시 근사한 싸움으로 묘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통쾌함보다는 통렬한 액션을 그렸다”고 밝혔다.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한다. 정우성이 벌이는 자동차 추격전도 그 중 하나. 물량공세 대신 치밀한 설계 아래 스타일리시한 장면을 완성한 감독의 관록이 엿보인다. 영화 후반부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20여분 동안 긴박하게 펼쳐지는 아귀다툼 역시 빼놓기 어렵다. 그 자체로 지옥의 모습을 묘사한 듯한 충격마저 던진다. 맨몸으로 맞붙는 대결, 도끼와 장도리를 들고 날뛰는 거친 싸움에서는 배우들의 결연한 각오가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여성관객과 중장년층에게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가능성이 크다.
이야기의 중심인 정우성은 최근 5∼6년 동안 내놓은 작품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활약으로 관객을 맞는다. 김성수 감독과 20여년 동안 쌓아온 신뢰로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는 정우성은 “액션 누아르에 관습적으로 나온 캐릭터가 아니라서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가야 할지 두려웠다”고 돌이켰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