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2016년 여름, 여심(女心)은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이영 세자에게 빠져있었다. 이영으로 분한 배우 박보검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 이어 첫 지상파 단독 주연 작인 ‘구르미 그린 달빛’까지 흥행시키며 스타가 됐다. 하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이영 세자와 달리 박보검은 유난히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이영과 마주했었다.
“제가 원래는 자신감이 없는 편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처음에는 부담감이 없었어요. (웃음) 일단 영화 ‘명량’ 이후 저는 계속 사극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말해 왔고 이영 캐릭터도 너무 신선하게 다가왔고요. 그런데 제가 가장 먼저 캐스팅이 됐었잖아요. 차차 김유정, 진영 등 캐스팅이 채워져가니까 부담감이 커지더라고요. 이영 캐릭터가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제가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잘 소화하지 못할 거 같은 불확실함? 중심도 잃고 힘들었었어요.”
그가 느낀 부담감은 ‘주인공’이라는 자리에서 비롯됐다. 박보검은 “‘내가 이끌고 가야지’라고 생각했었다. 착각이더라.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반성했다.
“가족들도, 회사 선배님들도 ‘네가 주인공이 아니야’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때 신원호 감독님 말이 떠올랐죠. 첫 방송 전에 ‘응답하라’ 식구들을 모아놓고 ‘드라마 흥패에 연연하지 말고 잘 하자. 누가 남편이 되든 주인공은 다 너희들 각자다’라고요. 제가 뭐라고 사랑을 받을까싶더라고요. 극을 이끌고 간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였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한 뜻으로 만들어가는 거라는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걱정과 달리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많은 명대사, 명장면은 계속 패러디됐다. 그 중 시청자 반응에 기반을 둔 유행어 ‘벌써 재미있다’에 대해 박보검은 “어! 그 말, 처음에는 반어법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벌써 재미있다’ 이런 댓글을 보고 ‘진짜 잘해야겠다’ 싶었어요. (흐흐 웃음) 물론 드라마가 시작되면서는 긍정적으로 해주신 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가뜩이나 이영 캐릭터에 대해 자신이 없던 상황에서 ‘벌써 재미있다’ 이런 말까지 오해를 해버리니까~ (으허허허 웃음) 그 말에 꽂혀서 ‘아, 진짜 칼 갈고 해야겠다’ 싶었죠.”
이영 세자에게 흠뻑 빠지기 시작한 건 1회에 등장한 구덩이 장면을 촬영할 때부터였다. ‘현장감이라는 경험했다’는 박보검은 “평소에 절대 쓰는 않는 ‘국밥새끼’라는 말도 안 되는 애드리브가 나오더라”며 “대본으로만 봤을 때와 달리 직접 구덩이에 빠지니까 공기, 흙냄새가 느껴졌고, 정말 김유정이 원망스러워졌다. 절실해졌다”고 ‘구르미’ 촬영 현장을 배움의 장소였다고 소개했다.
특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완전체 박보검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정통 사극 연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고 코믹부터 멜로까지 이영의 요동치는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연기력과 스타성을 모두 갖춘 배우로 주목받은 것이다.
“코믹연기는... 사실 저도 제가 능청스러운 면이 있는지 이번에 알았어요. 자신감이 없었던 이유 중에는 코믹연기 부분도 있었거든요.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표정으로 표현이 어려운 거 있잖아요. 거울 보면서 연습을 해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구덩이에 빠지는 장면 덕분에 확 풀렸어요. 대사, 장면을 요리할 수 있는 걸 배웠거든요. 능청스러운 연기가 갈수록 재미있어졌죠. 점수는... 매겨주세요.(ㅜㅜ) 아직까지 스스로에게 점수 매길 수 없을 거 같아요. 제3자한테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인데, 저는 스스로를 잘 아니까 부족한 것만 보였거든요.”
박보검은 대선배들과 정치적인 대결을 연기할 때는 “솔직히 카리스마에 ‘헛!’ 조금은 당황했었다”며 “선배님들이 먼저 손 내밀어 주시고 조언해주셔서 내가 놓친 부분을 채워갈 수 있었다. 선배님들 덕분에 이영이 만들어진 거고, 끝까지 이영이 굳게 잘 서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정통사극이요? 허억~! 정통사극을 나중에 하게 된다면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고 도전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다행이었던 게 이영이 세자에서 성군으로 성장하는 서사가 저 박보검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저 역시 사극에 처음 도전했고 배워가면서 성장하는 거요. 마지막에 붉은 용포를 입은 이영의 모습을 보고는 스스로 울컥했었어요. 그동안 흔들렸던 마음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외롭고 쓸쓸했죠. 이영에게 그 나이에 맞는 자유분방함과 그 나이에 맞지 않는 무게감을 표현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더불어 드라마 OST ‘내 사람’까지 가창하며 그야말로 완전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응답하라1988’ 인터뷰 당시에는 “라이브로 소화할 수 있을 때 OST를 부르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보검은 “‘내 사람’을 라이브로 부를 수 있을 거 같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창자에게도 주어지는 저작권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굉장히 기뻐했다.
“(‘내 사람’ 음이 제 것보다) 조금, 아주 조금 높긴 해요. 개미 감독님이 잘 만져 주셨죠. 제 꿈이었던 OST를 녹음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영광이었어요. 음원사이트에 제 이름을 검색해보거든요. (웃음) 음원이 있는 게 너무 신기해요. 라이브 가능할 거 같아요. 연습 많이 해야죠. 아, 음원 수익 저도 있는 거예요? 불러도 있어요? 저도요? 아 진짜요? (함박웃음)”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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