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미스티’는 여성을 위한 드라마였다. 유리천장에 맞서는 고혜란의 당당함, 자신감에 섹시함을 놓치지 않은 아우라가 시청자들을 홀렸고, ‘미스티’에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고혜란을 완벽하게 연기한 배우 김남주는 여성들의 워너비로 등극했다. 물론 김남주는 단 한 번도 스타가 아닌 적이 없었다. 90년대에도 도시적인 분위기로 완판 셀럽의 길을 걸었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깊이감을 더해 20대 여성들도 따라하고 싶어 하는 배우로 자리했다.
김남주는 “나이 많은 여배우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뿌듯했다”고 호응에 화답했다.
“‘미스티’를 하면서 40대, 내 열정을 모두 쏟겠다고 다짐했어요. 촬영 현장에서는 내 인생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했죠. ‘이제 연기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캐릭터, 이런 작품이 제 나이에 얼마나 들어올까 싶다는 의미죠. 쉽게 만날 수 없어요. 솔직히 ‘미스티’를 하면서 욕심이 생기긴 했죠. 50대 초반까지는 이런 역할을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연기하면서 스스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았어요. 저는 아줌마 그룹에 들어가 있는 배우잖아요. 결혼 안 한 연기자들과는 다른. 그 그룹 내에서 개척자가 된 기분도 들어요. 아이가 둘인데 주인공 할 수 있어!!! 커리어 우먼 역할 할 수 있어!”
덧붙여 김남주는 “결혼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앵커 역할, 팜므파탈 캐릭터를 이제야 만났다”고 기뻐했다.
“‘내조의 여왕’(2009)을 하기 전에 팜므파탈 캐릭터를 너무 하고 싶어서 ‘내조의 여왕’을 세 번 거절했었어요. 그런데 나이 먹고 ‘미스티’가 저에게 왔죠. 고혜란이 37세인데 제 나이 48세에 드라마가 끝난 거예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서른일곱 살에 만난 고혜란과 마흔 일곱 살에 만난 고혜란은 깊이감이 달랐을 거 같아요. 저는 20대 때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가진 배우였어요. 40대인 지금은 고급감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요. 그 고급감이란 건 연륜, 깊이를 의미하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직접 느꼈어요.”
사진제공|글앤그림
‘미스티’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배경에는 김남주의 자녀들도 큰 몫을 했다. 6년 전 ‘넝쿨째 굴러온 당신’ 때와 달리 첫째 딸 라희 양은 어엿한 중학생이 돼 ‘미스티’를 시청했고 학교에만 가도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래서 범인은 누구니, 나만 알고 있을게’ ‘너네 엄마 왜 이렇게 예쁘시니?’라는 말을 듣고 오기 일쑤였다. 엄마로서도 뿌듯할 수밖에. 김남주는 “여배우 인생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준 드라마다. 이 드라마 아니었으면 우리 딸이 한 말처럼 ‘엄마 시어머니 역할 할 나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나이 든 연기자들이 설 수 있는 드라마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나이에 맞게 순응하며 살고 있는데 ‘미스티’로 나이의 한계를 연장했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연기자인가봐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기 전까지는 고혜란을 남겨놓고 싶을 정도로 고혜란보다 좋은 캐릭터를 만날 수 없을 거 같아요. 만나기 쉬웠다면 ‘미스티’를 하기까지 6년이 걸리진 않았겠죠. 처음엔 고혜란이 악녀여서 좋았고요.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설정으로 준비를 했어요. 일반적인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시청자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우리 작가도 대단하고요. 이미 16부 대본이 나와있었고 지진희(강태욱 역)가 범인인 것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요. 저는 최고의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배우로서의 생명을 연장해줬다’고 말했듯 ‘미스티’ 속 김남주는 아줌마 배우가 아닌 여성 그자체로 돋보였다. 김남주 역시 “아줌마가 아닌 여성의 캐릭터로, 코믹 장르가 아닌 정극 멜로 드라마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며 부담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압도적인 분량만큼이나 비주얼적인 부분이 부담스러웠어요. 앵커지만 멜로도 해야 했고요. 자신이 없었죠. 괜히 욕먹고 들어오는 건 아닌가 싶었고요. 남편이 용기를 줬고, 고혜란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아서 기뻐요. 제 인생에서도 잊지 못할 기념비적인 드라마입니다.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고요, 후회 없어요.”
그러나 JTBC는 연말 연기 시상식을 개최하지 않는다. ‘미스티’로 극찬을 받았지만 트로피로 노력을 보상받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남주는 “시상식 만들어 달라”고 농담을 하더니 “시청자 반응, 기사로도 이렇게 폭발적인 극찬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것만으로도 됐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진심이다. 그러나! 백상 후보에는 올랐더라고요? 음하하하하”라고 진심을 전했다.
“차기작은... 못 할 거 같아요. 뭘 해야 할까요. (웃음) 고혜란이 너무 강렬해서 저 스스로도 굉장히 부담되거든요. 다음에는 쇼킹하게 사극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근데 시청자분들이 저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굳이 버릴 필요는 없죠. 굳이 제가 한복을 입고 사극을 하는 것은.. 변신하려다.. 네... (웃음) 마음에 드는 작품이 기적처럼 바로 나타난다면 바로 찾아뵐 거 같아요. 저의 팬들이 내 재능을 썩히지 말라고 해줘서 고마웠거든요.”
사진제공|더퀸AMC
동아닷컴 전효진 기자 jh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