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킬 앤 하이드’ 김봉환.
“여전히 실감이 나질 않아요. 첫 번째 공연을 올린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00번이 됐네요. 좋으니까, 정말 좋으니까 1000번의 무대를 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큰 보람을 느껴요. 우선 ‘지킬 앤 하이드’를 찾아주신 관객들에게 제일 감사드려요. 그 분들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나를 늘 신뢰해주는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와 데이빗 스완 연출, 조정만 PD, 원미솔 음악감독 그리고 모든 스태프들과 동료 배우들 모두 감사드려요. 그리고 부족한 가장인 저를 늘 응원해주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꼭 전하고 싶어요.”
2006년 ‘지킬 앤 하이드’를 시작으로 ‘댄버스 경’역을 맡은 지도 12년이 됐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첫 공연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킬 앤 하이드’ 합격 소식을 듣고 전 가족이 부둥켜안았다고 말하며 “온 집안이 축제였다. 아이들이 ‘아빠 멋지게 한 번 해내세요’라고 응원을 했다. 아내도 격려를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지킬 앤 하이드’는 꼭 해야겠다는 작품 중 하나였어요. 1999년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댄버스 경’을 보는데 뭔가 통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댄버스 경’도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한국에 ‘지킬 앤 하이드’가 오면 저 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06년 공연에 진짜 ‘댄버스 경’으로 무대에 올랐고 설레고 흥분되고 벅찬 기분이었어요. 여전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에요.”
1000회의 무대란, 수천 번의 연습 과정을 거쳤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계속된 대사와 넘버가 어찌 보면 지겨워질 법도 한데 김봉환은 무대에 오르는 순간 늘 새롭다고 말했다. 그는 “참 신기하게도 어제 섰던 무대와 오늘 선 무대의 느낌이 다르다. 새로움이 다가오기도 하고. 캐릭터에 대한 접근도 조금씩 더 세세해진다”라고 말했다.
“음악을 들을 때 날씨에 따라 혹은 기분에 따라 그 음악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연기도 그런 것 같아요. 배우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 차이가 있어요. 그 약간의 차이를 즐기면서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점점 쌓여서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2006년 ‘지킬 앤 하이드’ 공연 당시 김봉환.
물론 ‘댄버스 경’을 연기하며 힘든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2008년도에 무대를 준비하던 중에 몸을 풀다가 입이 찢어지고 치아가 부러져 치료를 받아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부상으로 다시는 배우 생활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김봉환은 이 이야기를 꺼내며 신춘수 대표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치료를 받아야 해서 2주 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신춘수 대표가 나오지 않았던 출연료를 지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출연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런데 출연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든 출연료를 지급해줘 정말 고마웠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12년 동안 수많은 ‘지킬’을 사위 삼고 ‘엠마’를 딸로 삼았던 김봉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가 누구인지 물었다. 그는 “모든 배우들이 훌륭하다. 각자의 특별함이 있다. 오랫동안 하다 보니 정말 내 사위 같고 내 딸 같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김봉환은 “첫 공연에 대한 특별함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첫 번째 ‘지킬’이었던 조승우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라며 “연습실에서 만나면 정말 반갑다. 진짜 내 사위 같다”라고 말했다.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배우예요.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죠. 캐릭터를 위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고 연기가 무척 섬세해요. 그런데 이게 ‘노력’만으로는 되기가 힘들거든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무대 위에서 다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런데 승우는 그걸 하는 친구인 것 같아요. 연기가 타고난 사람인거죠.”
“전생이 있다면 나는 ‘댄버스 경’이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할 정도로 김봉환은 역할에 대한 애정이 무척 강했다. 그는 “요즘 말로 ‘인생캐릭터’라고 하지 않나. 역할을 너무 애정하기 때문에 놓고 싶지 않다”라며 “누가 들으면 너무 욕심내는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만큼 놓칠 수 없을 만큼 이 역할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점점 더 ‘댄버스 경’에 빠져드는 것 같아요. 무대에 오르면 빙의라도 된 것처럼 그와 하나가 된 기분입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기분도 들고요. 1000회가 제게 배우로서 또 다른 시작의 의미가 되길 바라봅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오디뮤지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