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는 도덕성을 의심할 만한 사랑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애틋하고 슬프고 가슴 아픈 사랑이다. 사랑 끝에는 절절한 미안함과 사는 동안 잊을 수 없는 아련한 기억이 남는다. JTBC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극본 유영아 연출 김상호) 속 김진석(이무생 분) 캐릭터 이야기다.
김진석은 연예기획사인 챔프엔터테인먼트 대표다. 차미조(손예진 분)를 통해 우연하게 만난 정찬영(전미도 분)과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 불륜남으로 낙인찍힐지 언정 사랑을 지키고 싶다. 작품 후반에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가 된 정찬영에게 헌신적인 남자로 주목받는다. ‘쓰랑꾼’(쓰레기지만 사랑꾼), ‘이무생로랑’(이무생+이브 생 로랑) 등의 별칭은 여기서 출발한다.
“‘불륜’ 설정이 작품을 택할 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요. 김진석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나 여러 감정을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 마음에서 출발했어요. 김진석을 대본에 적힌 대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게 배우로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보다 설득력 있게 연기하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진석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김진석이라는 인물을 보면 ‘세상 어디에도 없을 남자’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불륜이라는 타이틀은 김진석이라는 인물을 단순히 ‘좋은 남자’, ‘좋은 사람’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무생은 김진석을 향한 시선보다 그가 처한 상황을 둘러싼 이야기에 집중했다. “김진석은 옳고 그름의 경계를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 김진석이기에 이런 상황을 제대로 적절히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 너무 명확하기에 ‘불륜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런 상황을 두고 많은 이야기(논란)와 해석이 오가는 것에 그저 감사해요.”
극중 김진석이 처한 복잡한 상황은 연기 베테랑 이무생에게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버티는 것. 여러 상황에 놓인 김진석이 어떻게 이런 상황들을 버텨내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어요. 이미 정찬영이 죽는다는 설정은 초반부터 정해지고 시작했어요. 그렇다면 ‘이걸 지켜보는 나는 어떻게 이 상황을 버텨내야 할까’, ‘어떤 뿌리를 가지고 가야 할까’를 고민했어요. 여러 인물과의 관계에서 그 줄기를 찾으려고 했어요. 그 중 한 가지는 정찬영에 대한 사랑이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정찬영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이요.”
많은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김진석 못지 않게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자신을 지키겠다는 그를 곁에서 봐야했던 정찬영 역시 감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정찬영을 연기한 전미도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전미도 배우와 호흡은 너무 좋았어요. 이 자리를 빌려 전미도 배우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미도야 고마워’. 어떻게 보면 심적으로 가장 힘든 캐릭터가 정찬영입니다. 그런데도 전미도는 현장에서 힘든 내색 한 번 내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모두를 대했어요. 덕분에 절로 힘이 나고 자연스럽게 현장 분위기도 더 좋아질 수밖에 없었어요.”
‘서른, 아홉’은 세 친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꾸려가지만, 그 안에는 가족, 우정, 사랑, 이별, 죽음 등 복잡한 관계를 다룬다. 극의 큰 축을 이루는 정찬영의 죽음 앞에 선 김진석의 절절한 사랑 역시 의미가 남다르다. 죽음을 대처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점은 이무생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대하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감히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지 전혀 감도 오지 않고 조심스러워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앞둔 상황이라면 ‘그대가 있어 충분한 인생이었다. 사랑한다’라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어요.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남은 생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요. 그렇게 남은 시간을 함께 해주고 싶어요.”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서른, 아홉’은 배우 이무생의 인생에서 조금 더 특별한 작품이다. “‘서른, 아홉’은 제게 있어 선물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시청자 여러분도 그런 뜻깊은 선물과도 같은 작품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서 김진석이라는 인물이 조금은 쓴맛을 냈을지 몰라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마셨던 커피 한 잔의 추억처럼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으로 남길 바라요.”
다작 배우인 이무생이지만, 특히 ‘서른, 아홉’은 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작품이다. “전보다 절 알아봐 주는 분들이 늘었어요. 많은 사람이 알아봐 주고, 많이 응원해주세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런 반응과 응원은 연기하는데 있어 큰 원동력이 돼요. 덕분에 제가 이 직업(배우)을 더 열심히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몇몇 분은 제게 ‘이무생로랑’이라고 하시는데, 그런 별명을 가질 수 있어 영광입니다. (웃음)”
이무생은 체력관리도 남다르다. 꾸준함을 추구한다. “30분간 쉬지 않고 달려요. 시간될 때마다 하려고 해요.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이런 맨손 운동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평소 정장 입을 일이 많이 없는데, 제 스타일에 대한 좋은 평이 많더라고요. 체력관리 외엔 따로 노력하지 않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른, 아홉’ 종영 후 이무생은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간다. 쉬어가기보다 ‘소처럼 일하는’ 성실한 배우다. “차기작은 ‘클리닝업’(극본 최경미 연출 윤성식)입니다. 김진석과 다른 매력을 이영신 캐릭터로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이번에도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른, 아홉’과 김진석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에게 머리 숙여 감사함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톤앤매너(Tone&Manner)가 분명한 이무생은 지금보다 특별한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이무생의 행보가 주목된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