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동아 이승미 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역대급 흥행으로 촉발된 대중적 관심이 희귀 유물 공개와 학술 연구, 나아가 국가적 보존 정책의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역대급 ‘문화적 파급력’을 증명하고 있다. 단종과 엄흥도의 충절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잠들어 있던 사료들이 잇따라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지난 24일부터 내달 19일까지 ‘고문헌으로 보는 단종과 엄흥도’ 특별전을 열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후손을 후대 조선 왕실이 공식적으로 예우했음을 보여주는 희귀 문건 ‘완문’(完文)을 최초 공개했다.

이 문건은 1733년 병조에서 발급된 것으로, 영조의 명에 따라 엄흥도의 6대손 엄철업 등의 군역과 잡역을 면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대 조선 왕실이 엄흥도의 희생을 어떻게 기억하고 보상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료로 평가된다.

엄흥도 후손에게 내린 공문서 ‘완문’, 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

엄흥도 후손에게 내린 공문서 ‘완문’, 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

이번 전시에서는 이 밖에도 ‘단종실록’과 ‘세조실록’ 원본, 춘원 이광수의 소설 ‘단종애사’ 필사본 등 고문헌 6종이 함께 공개되며, 단종의 유배부터 사후 복권에 이르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엄흥도의 마지막 삶의 터전으로 알려진 울산에서도 그의 충절을 입증하는 기록물이 처음으로 공개했다. 울주민속박물관이 엄흥도의 행적을 보완해 편찬한 ‘충의공엄선생실기’를 내달 26일까지 한정 전시하는 것. 해당 기록에는 엄흥도가 ‘삼족 멸문’의 위협 속에서도 어머니를 위해 마련해 둔 관을 사용해 단종의 장례를 치렀다는 구체적인 일화가 담겨 있다.

이와 함께 계유정난 당시 단종을 보필한 영의정 황보인의 아들 황보석의 복권 사실을 담은 ‘황보석주촌교지도’도 공개될 예정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촉발한 열기는 국가유산 정책의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최근 높아진 관심을 반영해, 단종이 잠든 강원 영월 장릉의 석조문화유산 16점을 포함한 주요 왕릉 석조물에 대해 10년 만의 정밀 재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영화적 상상력에서 출발한 대중의 호기심이 기록유산의 가치를 환기하고, 나아가 국가 차원의 보존 시스템까지 작동시키는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