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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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 이승미 기자] 17년 만에 돌아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화려한 명품들이 선사하는 비주얼적 재미는 여전했으나, 캐릭터의 매력과 이야기의 단단함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2006년 패션계의 냉혹한 현실을 세련되게 그려내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전작의 명성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번 속편은 화려한 포장지만 남은 빈 상자와 같은 실망감을 안긴다.

●‘얼렁뚱땅’ 전개되는 위기 극복…개연성 잃은 서사

영화는 탐사 보도 기자로 활약하던 앤디(앤 해서웨이)가 하루아침에 해고된 후, 패션 매거진 ‘런웨이’의 기획 에디터로 복귀해 미란다(메릴 스트립)와 재회하며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종이 매체가 저물고 소셜미디어가 지배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서 패션지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이들의 분투를 조명하겠다는 기획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지나치게 엉성하다. 런웨이의 소유주 교체와 대규모 인력 감축이라는 거대한 위기 상황을 마주하지만, 해결책은 고작 자산가들을 찾아가 “회사를 사달라”고 읍소하는 수준에 그친다. 거대 자본의 이동과 회사 인수가 마치 아이들 장난처럼 손쉽게 성사되는 과정은 관객이 납득하기 힘든 작위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패션지의 치열한 고민 대신 ‘스토리를 위한 스토리’로 대충 넘어가려는 연출의 안일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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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는 증발하고 ‘캐붕’만 남은 주역들

속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캐릭터의 붕괴, 이른바 ‘캐붕’에 있다. 특히 극의 상징과도 같은 미란다의 변화가 뼈아프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전작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다. 불합리한 상황에 맞서 판을 흔들던 미란다는 간데없고, 그저 나약하게 상황을 수용하기만 하는 무기력한 모습은 우리가 알던 ‘악마’가 맞는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주변 인물들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전작의 비서에서 광고주인 디올 관계자로 돌아온 에밀리(에밀리 블런트)는 미란다와의 권력 역전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설정을 가졌음에도, 정작 극 내내 사치와 향락, 재력가 남성에게만 집착하는 평면적인 ‘남미새’ 캐릭터로 소비된다.

주인공 앤디 또한 17년의 기자 경력이 무색할 만큼 중요한 국면마다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며, 매력 없는 로맨스 라인에 가로막혀 서사의 중심을 잡지 못한다. 유일하게 전작의 결을 유지하고 있는 베테랑 패션 디렉터 나이젤(스탠리 투치)만이 고군분투하며 극의 중심을 가까스로 지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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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때 가장 아름답다

물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하면 떠오르는 시각적 즐거움은 여전히 유효하다. 스크린을 수놓는 화려한 의상과 패션계의 풍경은 그 자체로 시선을 붙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이 서사의 빈틈까지 가려주지는 못한다.

결국 이 영화는 전작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명성에 걸맞은 깊이를 담아내는 데는 완벽히 실패했다. 명품 브랜드의 로고만큼이나 선명했던 캐릭터들의 개성은 휘발됐고, 치열했던 오피스 드라마의 긴장감은 설득력 없는 해피엔딩 뒤로 숨어버렸다. 전작의 감동을 온전히 간직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극장 문을 두드리기보다 17년 전 앤디와 미란다의 강렬했던 첫 만남을 다시 꺼내 보는 편이 나을 듯싶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