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미디어캐슬
[스포츠동아 이승미 기자] 혈연을 넘어선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통해 가족의 본질을 탐구해 온 세계적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신작 ‘상자 속의 양’으로 또 한번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죽은 아이를 대신해 7세 아이로 설정된 AI휴머노이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차가운 기술과 가장 원초적 감정인 상실을 교차시키며 ‘인간다움의 의미’를 묻는다. 10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방한한 고레에다 감독은 대한민국 관객의 마음에도 닿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O“AI를 소재 삼은 이유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AI 휴머노이드’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소재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약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레에다 감독이 AI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년 전, 중국에서 AI를 통해 죽은 사람을 디지털로 재현하는 사업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다.
“당시 중국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사업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호기심이 생겨 그 비즈니스를 하는 사장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죠. 그때 휴대폰 속에 남아 있는 고인의 영상과 사진을 기반으로 생성된 AI 재현 화면을 직접 보게 됐는데, 그 때의 기억이 이 이야기의 거대한 시작점이 됐죠.”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AI 자체가 아니었다. 기존 SF 영화들이 즐겨 다뤄온 ‘AI의 자의식’과 더불어 “AI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결핍이란 주제까지 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휴머노이드의 자아를 그리는 SF 작품은 이미 세상에 차고 넘칩니다. 그래서 저는 기술 그 자체보다는 휴머노이드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에 더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휴머노이드의 자아 형성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자의식은 과연 어디서 싹트는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이 생겼죠. 이를 위해 일본의 최첨단 AI 개발자분들을 만나 자의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자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상자 속의 양’ 스틸, 사진제공|미디어캐슬
‘상자 속의 양’은 결말에 이르러 인공지능을 다룬 기존 할리우드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궤적을 그린다. 과학의 결정체인 AI 휴머노이드들이 결국 인간 사회를 떠나 숲속으로 들어가 그들만의 공동체를 꾸린다는 설정은 평단 사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인공지능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이어지고 지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나무’와 흡사하다고 느꼈어요. 실제로 나무가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는 연구가 계속 나오고 있죠. 그래서 인간들의 사회보다 오히려 깊은 산속과 숲이 AI들에게 더 친화적인 배경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AI가 손을 잡는다면 그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나무가 될 거예요.”
이러한 전개 탓에 일각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명작 ‘A.I.’(2001)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두 작품이 가진 정반대의 에너지를 짚어냈다.
“저도 그 작품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다만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속 AI는 버려진 뒤 엄마를 찾기 위해 수동적으로 길을 나선다면, ‘상자 속의 양’ 속 카케루(쿠와키 리무)는 자신의 뚜렷한 의지로 집을 나간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요.”

사진제공|미디어캐슬
‘상자 속의 양’은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후 극단적인 ‘호불호 평가’를 얻었다. AI 발전을 바라보는 낙관적 시선이 ‘지나치게 안일하다’는 게 혹평의 주요한 이유였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를 ‘동서양의 세계관의 차이’로 해석했다.
“해외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양 관객들이 생성형 AI가 인간 사회를 지배하고 파괴하지 않을까라는 거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됐어요. 서양은 철저히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동양 문화는 인간만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휴머노이드가 인간보다 앞서 나가는 결말이 마냥 낙천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부부가 숲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가 아니라, 결국 인간은 씁쓸하게도 다시 인간 사회로 돌아와야 하는 결말이니까요.”
6월 극장가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특별한 인연과 흥행 대결을 펼치게 됐다. ‘브로커’를 함께하며 남다른 친분을 쌓은 배우 강동원의 코미디 신작 ‘와일드 씽’이 같은 시기 개봉하기 때문이다.
“어제 극장에서 동원 씨의 ‘와일드 씽’ 예고편을 우연히 봤는데 정말 반가웠어요. 그런데 예고편 속 모습이 너무 젊어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변하지 않는 멋진 배우예요.(웃음)”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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