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무척 좋아한다. 유독 더위를 타는 내가 여름을 버틸 수 있는 것도 야구 때문이다. 야구시즌이 시작되면 가슴이 설레고 야구시즌이 끝나갈 땐 우울해지는 등 야구와 연애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나의 야구사랑은 깊다.
우스운 기준이지만 나는 야구에 대한 호불호로 사람을 걸러내기도 한다. 잘 지내던 동료가 야구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이후로 마음속에서 그를 떠나보낸 적이 있는데, 지금도 겉으로는 잘 지내지만 근본적인 관계회복은 물 건너간 듯하다. 하긴, 나도 다른 스포츠를 비하한 적이 있으니 모르는 사이에 나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쫓겨났을지 모르겠다.
요즘엔 바빠서 야구장에 가지는 못하지만 예전엔 혼자서 야구장엘 간 적도 있다. 야구장에 가보면 다른 스포츠보다 여성 팬들이 많은데, 여성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생긴 야구선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많은 여성 팬들이 야구 자체에 대한 애정과 열정,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가끔 여성 팬들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경기 분석이며 선수 분석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포츠 경기 중에서 덜 경쟁적이기 때문이다. 시간제한도 없고 몸싸움도 없으며 선수들이 과격하게 부딪혀가며 일대일로 시시각각 전의를 불태워야 하지도 않는다.
야구는 규칙과 현장의 간극을 음미하는, 전화위복과 호사다마의 역학을 음미하는, 그 사이와 차이를 음미하는 스포츠다.
아, 그렇다. 내가 떠나보낸 동료는 “야구가 스포츠냐”고 했던 것 같다. 그에게 스포츠는 무조건 경쟁적이고 과격해야 하며 냅다 뛰고 숨 가빠야 하는 것이었나 보다. 나에게는 그런 스포츠가 나를 스포츠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럴 것이다.
몸싸움하기 싫고 경쟁하기 싫어서 스포츠를 기피하는 것은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학교에서의 스포츠는 결정적인 보상과 치명적인 벌이 뒤따르는 경쟁체제의 총아이기 때문에, 경쟁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스포츠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런데 여자인 나에게는 그러한 성향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남자인 우리 아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경쟁을 기피하는 허약한 남자들은 대한민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언젠가 남녀를 떠나 우리처럼 심약한 사람들이 맘 놓고 스포츠를 하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야구중계를 하는 텔레비전 앞에서 더운 여름을 나고 있다.
윤 재 인
프리랜서 전시기획자. 학교를 다
니지 않는 17살 된 아이와 둘이 살
고 있다. 생긴 대로 살아가도 굶어
죽지 않을 방법을 모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