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짜리 이어폰과 30만원짜리 이어폰은 무엇이 다른가

입력 2011-10-18 09: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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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용 프리미엄 이어폰, 젠하이져 CX980i

대부분의 제품에는 ‘등급’이나 ‘레벨’이라는 게 엄연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같은 자동차라도 내외장 옵션에 따라 가격은 물론 성능에서도 차이가 난다. 영상/음향 기기 분야에서 이러한 등급별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며, 그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스피커 하나만 해도 몇 천 원짜리부터 수백, 수천 만 원을 호가한다. 무슨 차이가 있길래 가격차가 이토록 클까? 내부에 금붙이라도 들어있는 걸까? 아니면 음질이 정말 확연하게 달라서일까? 그 음질의 차이는 절대음감을 소유한 사람들만 체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여기 범상치 않은 이어셋(이어폰+마이크)이 하나 있다. 겉포장도 생김새도 부속품도 사뭇 남다르다. 가격은 한술 더 떠서 유별나다. 2011년 10월 현재 인터넷 쇼핑몰 최저가 32만 원. 동네 가전매장에서 말만 잘 하면 공짜로도 얻을 수 있는 게 이어폰인데, 3만 원도 아닌 32만 원짜리를 과연 누가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물론 30만 원을 3만 원의 가치로 인식하는 부호들은 몇 개라도 살 게다).


뭐가 어떻기에 32만 원인가. 본 리뷰어도 자못 궁금하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1만 원짜리 이어폰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데, 32만 원짜리는 어떨지 직접 확인해 봤다. 참고로 본 리뷰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음질을 명확하게 구분할 훌륭한 ‘귀’는 가지고 있진 않다. 그래도 좋은 음향 기기는 어떤 소리를 들려 주는지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


문제(?)의 이어셋은 음향기기의 명가 젠하이져의 ‘CX980i’다. 아이폰/아이팟/아이패드를 지원하는 이어폰+마이크 제품이다(애플 사용자는 좋겠다). 이어폰을 살펴 보기 앞서 우선 ‘젠하이져’라는 브랜드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 본다.
편집자 주

이어폰, 헤드폰과 같은 음향 기기에 대한 체험을 글로 전달하기가 가장 어렵다. 직접 듣지 않고서는 리뷰어가 글로서 표현하는 내용을 공감하기 어렵고, 그 공감 역시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은 직접 만나 봐야 알 수 있듯이 음향 기기도 직접 들어 봐야 알 수 있다. 이에 본 CX980i 리뷰는 본 리뷰어의 청력과 감성, 리스닝 패턴, 선호 장르 등 다분히 주관적인 시각으로 작성됨을 전제로 한다.


젠하이져(Sennheiser electronic)는 1945년 독일의 프릿츠 젠하이져(Fritz Sennheiser)가 창립한 음향 기기 전문 기업이다. 현재는 마이크, 헤드폰, 이어폰, 스피커 등 소비자 및 전문가용 음향 기기를 생산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1960년대부터 오픈백(open-back) 헤드폰, 적외선 기술, 무선전송 기술 등을 개발하며 음향 기기 분야에서 ‘명가’로 인식되고 있다. 전세계에 걸쳐 1,80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본사는 독일의 베데마르크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MP3 플레이어 등의 음향 기기에 번들(기본 제공) 이어폰으로 공급되면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인지 ‘젠하이져’하면 ‘공짜 이어폰’, ‘저가 제품’이라는 선입견을 갖는 사용자가 적지 않다. 만약 그러한 독자가 있다면 본 리뷰를 보고 그러한 편견은 버리기를 바란다.


비싼 만큼 제대로 된 구성

제품 패키지부터 비싼 티를 ‘팍팍’ 낸다. 마치 고급 위스키 뚜껑처럼 패키지를 밀봉해 둔 것이 인상적이다. 구매자가 첫 개봉자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개봉 테이프’을 끊으면 이어폰답지 않게 다양한 구성품을 볼 수 있다. 본 리뷰어는 리뷰 시 제품 개봉기는 본문에서 제외하는데, CX980i 만큼은 내용물을 하나하나씩 소개하고 싶어졌다. 이어폰 포장에 뭐가 이리 많이 들었나.

하나씩 나열한다. CX980i 이어폰, 설명서(애석하게도 한글 번역은 없다), 보관 케이스, 가죽 케이스, 비행기용 연결잭, 청소용 막대, 이어캡(유닛에 끼우는 솜) 3세트, 메모리폼 캡 1세트, 케이블 클립, 이어캡 파우치 등이다. 처음에는 괜히 가격 높이려고 쓸데 없는 구성품을 넣었다 폄하했는데, 사용해 보니 그 나름대로 용도와 효과는 있는 듯했다.


이들 구성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메모리폼 캡이다. 본 리뷰어는 귀가 이상하게 생겨서인지 이어폰 솜이 없으면 이어폰이 귀에 제대로 걸리지 못한다. 그래서 CX980i와 같은 커널형 이어폰(귓구멍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CX980i의 메모리폼 캡은 고급 베개에 들어가는 메모리폼을 그대로 적용하여 귀에 쏙 들어갈 뿐 더러 오래 착용하고 있어도 전혀 귀가 아리거나 아프지 않아 좋다.


나머지 이어캡도 귀 모양에 따라 대/중/소 크기로 교환할 수 있다. 설명서에 따르면 이어캡 크기에 따라 베이스(중저음) 출력 유형이 다르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들어보니 본 리뷰어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참고로 메모리폼 캡을 사용하는 경우 사운드가 바깥으로 거의 새 나가지 않는 듯했다(설명서에서는 이를 ‘secure’ 기능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외에 이어폰 보관 케이스 및 가죽 케이스도 제법 쓸모 있다. 30만 원짜리 이어폰이니 이런 고급 케이스가 당연히 필요하다. 비행기 내 이어폰 단자에 사용하는 젠더와 케이블은 일반적으로 옷 등에 클립으로 고정하게 되어 있는데, 이 클립을 케이스에 끼워 보관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가죽 케이스까지 덮어 씌우면 프리미엄 이어폰의 이동 준비가 완료된다.


작은 파우치는 이어폰이 아닌 이어캡 등을 넣는 용도로 사용하면 된다(그 보다는 동전 주머니로 활용하면 딱 좋다).

끝으로 성냥개비같이 생긴 청소도구는 이어폰 유닛 쪽에 들어가는 작은 필터를 교체하는데 사용된다. 필터에 먼지나 이물질이 많이 낀 경우 이를 교체하면 된다. 여분 필터도 3개가 들어 있다. 이처럼 CX980i는 다른 이어폰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디테일’을 제공한다. 왜? 가격이 비싸니까? 그도 그렇지만 명품 브랜드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하련다.


역시 ‘귀티’나는 바디라인

30만 원짜리 이어폰은 외형도 역시 고급스럽다. 이어폰 헤드 부분, 중간 리모컨 부분, 끝 단자 부분을 금속(메탈) 소재로 구성하여 포인트를 줬다. 헤드 부분의 케이블 길이는 왼쪽, 오른쪽 동일하다. 중간의 리모컨 부분은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와 연동된다. 다른 스마트폰(안드로이드)이나 MP3 플레이어 등에서 작동해 보니 당연히 안 됐다(제품에 따라서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와 (-) 버튼은 볼륨 조절을, 가운데 젠하이져 로고 버튼으로는 전화를 받거나(짧게 한번 누름) 전화를 거부하거나(길게 누름), 음악 재생 시 다음 곡 선택(짧게 두번 누름) 또는 이전 곡 선택(짧게 세번 누름)할 수 있다. 마이크는 리모컨 뒷면에 있다.


단자 부분도 독특하다. 이 역시 금속 소재로 되어 있으며, 중간 부분을 잡아 돌리면 단자가 ‘ㄱ’로 꺾어진다. 기기에 따라 또는 취향에 따라 변환해서 사용하면 된다. 케이블 전체 길이는 약 1.2m로 아이폰을 사용하기에는 적당한 수준이다. 보관 케이스에 넣지 않고 둘둘 말아 가지고 다녀도 심하게 꼬이거나 엉키지 않는다.


음악을 듣다가 전화가 오면 젠하이져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으면 되는데, 마이크가 리모컨 부분에 있다 보니 웬만해서는 이를 입 쪽으로 가져다 대고 말해야 상대방에게 잘 들릴 것으로 판단된다.

과연 음질은 어떤가?

이어폰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제 아무리 화려한 구성품을 제공해도 음질이 1만 원짜리 이어폰과 다를 바 없다면 거품에 불과하다. CX980i의 음질을 확인하는 방법은 별 거 없다. 동일한 음악을 틀어 놓고 1만 원짜리와 비교해서 들어 보면 된다.


우선 컴퓨터에서 무손실 음원 형식인 flac 파일을 재생하고, 일반 이어폰과 CX980i를 번갈아 꽂아가며 최대한 집중하여 비교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CX980i가 확실히 월등한 품질의 사운드를 들려줬다. 물론 이러한 음질 차이가 서른 배 이상의 가격 차이를 커버할 순 없겠지만, 동일한 음원을 두고 누가 들어도 또렷이 구분할 만한 사운드를 출력했다는 점에서 인정할 했다.

1만 원짜리 이어폰도 CX980i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만족감을 줬다. 하지만 CX980i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사운드가 가볍고 중저음이 약하며 탁한 느낌마저 들었다. CX980i와 번갈아 들으면 들을수록 저가 이어폰의 성능적 한계를 여실히 체감했다. 평소에 아무 불만 없이 사용하던 이어폰이 두 번 다시 사용하고 싶지 않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사람은 이래서 간사한 존재다).


그에 반해 CX980i는 저가 이어폰에서는 출력하지 못하던 미세한 사운드까지 명확하게 잡아 올렸다. 특히 아이폰 등의 음향 효과 중 ‘베이스 부스터(Bass Booster)’를 적용했을 때 보다 풍부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컴퓨터에서 블루레이 영화를 재생해 들어 보니, 모니터 화면은 작아도 탁월한 사운드 때문에 몇 번을 본 영화지만 금세 몰입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것이 ‘소리의 힘’이다(기회가 닿으면 ‘트랜스포머3’ 블루레이 타이틀을 CX980i로 들어보라).


결론적으로 음질에 있어서는 ‘젠하이져’라는 세계적 브랜드에 누를 끼치지 않을 만큼 썩 괜찮은 사운드를 출력함을 확인했다. 글쎄, 그래도 30만 원 넘는 가격은 결코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갖고 싶지만 자신의 돈으로 사기에는 아깝고,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았으면 딱 좋을 제품, 젠하이져 CX980i가 그 중 하나다.


20만 원짜리 브라운관 TV보다 200만 원짜리 HD TV가 인기 있는 시대


요즘 TV를 새로 장만할 때 구형 브라운관 TV를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여 만 원이면 사는 TV 대신 200만 원 이상 지불하며 대형 HD LCD/LED TV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이전보다 나은 사용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젠하이져 CX980i도 그런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이어폰 하나에 32만 원을 기꺼이 지불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CX980i를 소지하고 있다면, 어디선가 CX980i를 잠깐 접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꼭 한번 직접 들어보기를 강력히 권장한다. 그러면 양질의 사운드에 대한 견해를 글로서 표현해야 하는 리뷰어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리라 본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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