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빛초롱축제 청계광장~광교 전경                     사진제공 | 서울관광재단

2025 서울빛초롱축제 청계광장~광교 전경 사진제공 | 서울관광재단



“서울빛초롱축제와 광화문 마켓은 서울의 겨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국내 관광객은 물론 세계인까지 즐길 수 있는 글로벌 축제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이사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어둠이 내리고, 불이 켜진 청계천을 몇 미터만 걸어봐도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빛초롱축제 투어의 시작은 청계천 동아미디어센터 앞의 랜드마크 원뿔탑. 하지만 이날은 원뿔탑이 아니라 거대한 6단 케이크 탑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조명이 들어온 케이크 탑과 동아미디어센터 외벽에 설치된 국내 최대 미디어 사이니지 ‘룩스’를 한 화면에 담으려는 관람객들의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청계천은 초입부터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찼다.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탑과 동아미디어센터의 ‘룩스’가 어우러져 마치 미래 세계의 도심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양형모 기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탑과 동아미디어센터의 ‘룩스’가 어우러져 마치 미래 세계의 도심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양형모 기자


올해로 17회를 맞은 서울빛초롱축제는 ‘나의 빛, 우리의 꿈, 서울의 마법’을 주제로 내년 1월 4일까지 이어진다. 청계광장에서 삼일교, 오간수교까지 이어지는 청계천 구간과는 별도로 강북지역 우이천에서도 축제가 열린다.

청계천 구간은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됐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빛으로 풀어낸 ‘미라클 서울’, 마음속 꿈을 담아낸 ‘골든 시크릿’,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다룬 ‘드림 라이트’, 동심을 자극하는 ‘서울 판타지아’가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청계천 빛초롱 투어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말 형상들

청계천 빛초롱 투어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말 형상들


그럼 이제 걸어보자. 내년은 붉은 말의 해. 색색의 빛을 띤 말 조형물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빛의 정원을 천천히 걸으며 보이는 모든 것을 눈과 카메라에 담아 나간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설치미술가 한원석 작가의 ‘환월’

설치미술가 한원석 작가의 ‘환월’


달항아리가 시선을 좀 더 오래 붙잡았다. 설치미술가 한원석 작가의 신작 ‘환월(Re:moon)’이다. 폐차된 자동차에서 떼어낸 헤드라이트 600개를 재조합해 만든 작품으로, 청계천 수면에 ‘도시의 달’을 띄웠다. 요즘은 유리 헤드라이트를 구하기 어려워 구형 자동차를 찾아다녀야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 ‘잉어킹’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 ‘잉어킹’

잉어킹이 진화한 갸라도스와 그 위에 올라탄 피카츄

잉어킹이 진화한 갸라도스와 그 위에 올라탄 피카츄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구간은 단연 잉어킹 전시였다. 광교에서 장통교까지 73미터 구간에 100여 마리의 잉어킹과 거대한 갸라도스, 피카츄가 등장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관람객들은 좀처럼 잉어킹 구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잉어킹은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물 위에서 파닥거리는 게 사실상 능력의 전부라 ‘약한 포켓몬’의 대명사로 불린다. 하지만 꾸준히 경험치를 쌓으면 강력한 용급인 갸라도스로 진화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잉어킹은 “지금은 보잘것없지만 나중에 달라진다”는 상징처럼 여겨진다. 이 전시 역시 “언젠가는 갸라도스로 진화해 강해지고 싶다”는 잉어킹들의 소망을 주제로 하고 있다.
느닷없이 진짜 불을 입에서 뿜어내 관람객을 놀래키는 공작

느닷없이 진짜 불을 입에서 뿜어내 관람객을 놀래키는 공작


날개를 활짝 편 공작 조형물도 인기가 높았다. 주기적으로 입에서 진짜 불을 뿜어내 관람객들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이 짓궂은 공작에게 ‘태어나서 불닭볶음면을 처음 먹어본 공작새’라는 별명을 붙여보았다.
광화문마켓 전경           사진제공 | 서울관광재단

광화문마켓 전경 사진제공 | 서울관광재단


청계천의 밤은 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진다. 이순신 장군께서 지켜주고 계시는 광화문 마켓은 광화문광장을 유럽 감성의 ‘겨울동화 속 산타마을’로 꾸몄다. 산타마을 입구와 놀이광장, 마켓 빌리지로 나뉜 공간에는 포토존과 루돌프 회전목마, 크리스마스 소품과 먹거리를 파는 부스가 이어졌다. UNHCR와 옥스팜 코리아 등 기관이 참여한 파트너 부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나저나 여기까지 나왔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루의 가성비가 떨어진다. 뜨끈한 콩나물국밥 한 그릇 급히 비우고,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로 달려간다. 서울시뮤지컬단의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럴’이 재밌다는 소문이다. 이렇게 해서,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님의 개과천선 이야기까지 또 한 그릇 뚝딱.

세종문화회관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109번 버스를 기다리며 캐럴을 흥얼거려본다. 빛으로 가득한 청계천과 광화문광장은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인다. 눈도 귀도, 마음도 초롱초롱해진다. 이 밤의 축제는 이름도 참 잘 지었다.

[여밤시] 여행은 밤에 시작된다. 캐리어를 열고, 정보를 검색하고, 낯선 풍경을 상상하며 잠 못 드는 밤. 우리들의 마음은 이미 여행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