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인천 부평 조병창에서 태어난 99식 소총 ‘빵야’를 든 한물간 방송작가 나나.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우물처럼 깊은 속살 연기를 보여준 전성민에게 두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제공 | 엠비제트컴퍼니

1945년 인천 부평 조병창에서 태어난 99식 소총 ‘빵야’를 든 한물간 방송작가 나나.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우물처럼 깊은 속살 연기를 보여준 전성민에게 두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제공 | 엠비제트컴퍼니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2시간 50분짜리 연극이라니! 이 기나긴 시간을 나는 집중력을 있는 힘껏 끌어모아 관극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작품에 당장이라도 미안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1945년 2월, 인천 부평 조병창에서 태어난 99식 소총 이야기. 연극 ‘빵야’는 소품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낡은 장총 한 자루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백두산 압록강변 졸참나무로 만들어진 몸통에 마당 펌프, 부엌 가마솥, 호른의 밸브를 녹여 만든 쇳덩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우리는 모두 총이 되어 버렸다”는 고물 장총의 생애는 그 자체로 비극의 궤적이다. 

가마솥이 없으면 밥은 누가 짓고, 펌프가 없으면 목은 어떻게 축이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물들이 살상의 도구로 뭉쳐진 끔찍한 연금술이 가슴을 찌른다. 김은성 작가의 대사들은 어둠 속에서도 햇살을 받은 듯 온 군데에서 반짝였다. 우아했고 우스웠지만, 때때로 가혹하고 슬펐다. 누군가는 이 연극을 시대극으로, 블랙코미디로, 사회풍자로, 심지어 판타지로 읽을지 모르겠다. 나도 아마 이 중 하나를 고르게 되겠지.

그런데 작품이 하고 싶은 말에서 살짝 비켜선 나는, 극 중 나나라는 작가의 삶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나나는 5년째 세상에 나오지 못한 글만 쓰고 있는 40대 한물간 드라마 작가다. 방송 편성에 번번이 실패하며 모멸과 궁핍을 견디던 그는 장총 빵야의 궤적을 쫓으며 새로운 글길을 연다.

기자도 결국은 꾸역꾸역 글을 써서 월급을 받는 업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동병상련에 죄의식, 질시 같은 복잡한 감정을 포스트잇처럼 덕지덕지 붙여가며 나나의 궤적을 쫓고 있었다. 나나의 팍팍한 현실을 보며 안도했다가도, 소총 빵야의 이야기를 쓰며 작가적 희열을 온몸에 적시는 모습에 덜컥 부러워졌다. 

입신양명을 꿈꾸는 관동군 조선인 장교 기무라부터 소녀 빨치산 설화까지. 빵야를 스쳐 간 아홉 주인의 사연은 곧 한국 근현대사의 핏빛 궤적이다. 일제 치하 만주 벌판부터 광복 후의 혼돈, 처절한 한국전쟁과 군부 독재 시절이 붉은 피를 뿌리며 속도감 있게 지나간다. 

나나는 이들의 죽음을 가벼운 오락거리로 소비하려는 방송사 기획팀의 자본 논리와 정면으로 부딪친다. 기무라를 일본인으로, 팔로군을 광복군으로 바꾸라는 수정 요구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간담이 서늘하다. 판권을 넘기라는 대형 제작사의 조건을 뿌리치는 대신 차라리 대본 완성을 포기하는 나나의 결기 앞에서, 나는 결국 부끄러워졌다.

개인적으로 2월은 내게 가혹했고 3월은 변화가 있었으며 4월은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내가 쓰는 짧은 글들은 기사라는 이름을 달고 오늘도 몇 개나 세상으로 나갔다. 나나의 글 스승은 제자에게 말했다. “쓰고 싶은 대상이 너에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기다려.” 반면 기자 걸음마 시절 나의 직속 선배는 말했다. “기사는 아이스크림 같아. 쥐고 있으면 녹아버려.” 나는 나나가 많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녹아버리는 글을 쓰는 자의 숙명이랄까.

나나를 연기한 전성민은 한국 뮤지컬계에서 대표적인 ‘작은 거인’ 중 한 명이다. 2009년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데뷔했는데, ‘넥스트 투 노멀’의 나탈리, ‘리지’의 리지 보든, ‘웨이스티드’의 샬롯을 지문처럼 확고히 기억하고 있다. 조그마한 체구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졌다. 그런데 그의 폐와 성대와 입술을 거쳐 터져 나오는 소리는 분명 사냥 나선 암사자의 것이다. 그냥 볼륨만 큰 게 아니다. 정제된 음색의 골을 타고 특유의 기름기가 흐른다. 그가 품은 지적인 이미지도 그간의 캐릭터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 | 엠비제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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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와 연극 배우를 굳이 분리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고리타분한 분류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는 ‘뮤지컬만 하는 배우’가 아니라, ‘뮤지컬도 할 수 있는 배우’인 것.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뮤지컬씩이나 할 수 있는 배우’라고 여기고 있다. 

전성민은 이 정의에 대단히 부합하는 배우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지 않는 전성민은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탁월한 발성으로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들은 상대 배우의 그것들과 빈틈없이 맞물려 들어갔다. 그의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우물처럼 깊은 속살 연기에 두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보냈다. 

오래 기억될 연기를 보여 준 배우 전성민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가 마지막에 배려하지 않았더라면, 빵야의 총구는 정통으로 나를 향했을 것이다.  그 긴 세월에 걸쳐 슬픔, 안타까움, 연민, 분노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마침내 응축시켜 낡은 장총의 고독을 만들어낸 전성우도 더없이 훌륭했다.

무기는 사람을 죽이지만 악기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태어난다. 호른의 부품을 방아쇠로 달고 있는 빵야는 부끄러워하며 악기가 되고 싶어 했다. 나나는 상업적 성공을 내려놓는 대신, 빵야를 위해 기꺼이 상상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한다. 총이라는 흉포한 물성을 악기라는 예술적 유희의 도구로 전환하는 찰나, 빵야의 주인이었던 모두가 소환돼 각자의 악기를 들고 환히 웃는다. 곡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빵야가 발사되며 지긋지긋했던 저주의 폭발음은 음악이 된다. 비극의 역사는 비로소 작가의 낭만적 배려 안에서 긴 휴식을 맞는다.

마지막 한 발의 총성을 울리기까지, 사람을 살리는 악기가 되고 싶었던 소총의 꿈을 어루만지는 이 걸작 연극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관객을 맞는다. 오케스트라의 환한 웃음 속에서 장총의 아홉 주인은 비로소 자유로워 보였다. 시대의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휩쓸려야 했던 모든 평범한 영혼들에게, 이 연극이 부디 따뜻한 진혼곡으로 가닿게 되기를.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