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많은 여자가 임신이 잘 된다.”

예전 어른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과학적 근거도 없는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대 생식의학은 오히려 이 오래된 속설 속에 주목할 만한 진실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생식 기능은 생각보다 밤과 깊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난임의 원인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흡연, 비만, 음주를 먼저 떠올린다. 실제로 모두 중요한 위험요인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요인이 있다. 바로 수면이다. 임신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비타민D, 오메가3, 코엔자임Q10 같은 영양제를 챙기면서도 정작 새벽 1,2시까지 스마트폰을 보는 생활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생식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 순서가 거꾸로 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간의 몸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 회복하도록 설계돼 있다. 여성의 배란을 조절하는 생식호르몬은 뇌의 생체시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남성의 정자 생성과 남성호르몬 분비 역시 수면의 영향을 받는다. 잠을 자는 동안 몸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생명을 준비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최근 생식의학 연구에서 주목받는 물질은 멜라토닌이다. 흔히 수면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이기도 하다. 특히 난포액에서도 발견되는 멜라토닌은 난자를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자는 태어나기 전 이미 만들어져 수십 년 동안 난소 안에서 기다리다가 배란된다. 인체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세포인 셈이다. 따라서 난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노화와 산화 스트레스다.

문제는 현대인이 밤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화면에서 나오는 인공조명은 뇌를 속인다. 몸은 아직 낮이라고 착각하고 멜라토닌 분비를 줄인다. 결국 생체시계가 흔들리고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 불면증이 아니더라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 자체가 생체리듬을 교란할 수 있다.

생식 기능은 이런 변화에 생각보다 민감하다. 교대근무 여성에서 생리주기 이상과 배란장애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들이 꾸준히 보고 되고 있으며, 남성 역시 수면 시간이 부족할수록 정자 수와 운동성이 감소하는 경향이 관찰된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남성에서 정액의 질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물론 수면 부족만으로 난임이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생식은 연령과 유전, 환경호르몬, 영양 상태, 스트레스 등 수많은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복합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수백만 년 동안 해가 지면 잠들고 해가 뜨면 활동하는 환경에서 진화해왔다. 불과 수십 년 사이 등장한 24시간 사회, 야간 근무, 스마트폰 문화는 우리의 생체시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고 있다. 인간은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자신의 설계도를 거스르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난자를 젊게 만드는 약은 아직 없다. 정자를 20대로 되돌리는 치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몸이 원래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시간표를 존중하는 것은 가능하다. 임신을 준비하는 부부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것은 비싼 영양제가 아니다. 오늘 밤 한 시간이라도 더 일찍 불을 끄고 잠드는 일이다. 충분한 수면은 임신을 준비하는 남녀 모두에게 가장 쉽고도 중요한 생식 건강 관리법이다.
조정현 원장/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학술전문위원, 현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연세대 의대 졸업, 전 강남차병원 교수, 전 미즈메디강남 원장 역임

조정현 원장/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학술전문위원, 현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연세대 의대 졸업, 전 강남차병원 교수, 전 미즈메디강남 원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