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영화줄줄이몰락,그래도버릴수는없다

입력 2008-11-23 08: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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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문화비평
한국 코미디 영화 부진이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다. 기대작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외 ‘울학교 이티’, ‘아기와 나’, ‘미쓰 홍당무’, ‘걸스카우트’, ‘가루지기’, ‘잘못된 만남’ 등 중급 영화들도 모조리 실패했다. 비단 올해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 코미디 영화는 해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인기를 잃었다. ‘가문의 영광’이나 ‘두사부일체’ 프랜차이즈가 500만 관객을 넘어서고, ‘마파도’ 정도의 중급 프로덕션이 300만 관객을 기록한 건 벌써 옛일이다. 지난해에는 그래도 ‘바르게 살자’와 ‘색즉시공 2’가 200만 관객을 넘어섰지만, 그게 코미디 영화의 마지막 숨통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강철중’ 등 타 장르 영화에 입김처럼 코미디적 요소가 불어넣어지는 게 다였다. 제 발로 혼자 설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게 됐다. 코미디 영화 부진은 사실 원인이 미묘하다. 본래 코미디 영화는 경제 불황기에 잘 된다. 할리우드 스크루볼 코미디는 대공황 시대의 산물이었고, 일본 역시 ‘잃어버린 10년’ 동안 구도 칸쿠로, 미타니 코우키 같은 신세대 코미디 작가들을 탄생시켰다. 쉽게 생각해봐도 지치고 힘든 대중심리에는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콘텐츠가 잘 맞는다. 한국 역시 같은 상황에서 ‘잘 돼야만’ 하는데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이유를 따져보면, 여러 가지다. 먼저 장르 구조 내에서 변용이 잘 안 됐다. 비슷비슷한 콘텐츠를 너무 많이 내놓아 대중의 신뢰를 잃었다. 타 장르와 달리, 코미디 영화는 이상하게 하나가 히트하면 떼거지로 몰려가는 동네 축구 시장을 형성했다. 이런 식이면 자연적으로 시장이 무너진다. 또 다른 이유는 현 한국의 미디어 상황과 크게 맞물린다. 불법 다운로드가 범람하면서, 극장은 ‘보다 큰 영화’일 때 찾게 됐다. 중국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어, 세계적 거장 장예모마저도 “지금 중국 대중은 초대형 영화를 만들어야만 극장으로 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장쾌한 스펙터클을 비롯, 시각적 쾌감이 뛰어난 스릴러물, 그것도 아니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처럼 현 대중심리를 꿰뚫는 감동드라마 정도만 되는 구조다. 지금 ‘작은 영화’는, 예술영화가 되었건 상업코미디영화가 되었건 같은 약점을 지니게 된 셈이다. 이런 때에는 코미디 장르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새바람이라는 게 더 큰 덩치를 만들어 대중정서에 부합하는 방향이어선 곤란하다. 그러면 중급 프로덕션을 대표하는 코미디 장르의 시장적 매력이 사라진다. 같은 중급 구조 내에서, 방향성을 새로 부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결국 새바람은, ‘지금껏 잘 안 된다 여겨졌던 콘셉트’를 다시 살리는 방향밖에 안 남는다. 무모한 도전이지만, 이런 도전도 중급 규모이기에 해볼 만한 것이다. 도전하지 않는 상황, 지금껏 ‘된다’고 여겨졌던 방향으로만 돌진했던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아이디어가 모두 소진되고 장르적 매력도 떨어졌다. 어차피 갈 길은 모험밖에 없다. 모험 중에서도 골라보자면, ‘해봤는데 안 됐던’ 서브 장르로 가는 건 여러모로 위험하다. 육아 서브 장르, 스포츠 매개 서브 장르, 뮤지컬 형식을 가미한 서브 장르 등이 그렇다. 이미 실패 경험이 있으면 서브 장르 인상도 안 좋아 분위기 전환이 어렵다. 남는 건 ‘해본 적은 없지만 안 될 것 같았던’ 장르다. 대표적인 것이 팬터지형 코미디다. 팬터지형 코미디는 사실 상 할리우드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효과가 늘 좋다. 대표적인 것이 짐 캐리 코미디다.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변호사 이야기 ‘라이어 라이어’, 신에게서 ‘능력’을 부여받은 남자 이야기 ‘브루스 올마이티’ 등이 있다. 애덤 샌들러도 비슷한 콘셉트를 즐긴다. 리모컨으로 생활을 조종하는 ‘클릭’, 현재 개봉 예정인 ‘베드타임 스토리’는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줬던 이야기가 다음날 현실로 다가온다는 내용이다. 이런 팬터지형 코미디가 ‘안 될 것 같았던’ 이유는 하나다. 위 언급한 할리우드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외 일본영화나 홍콩영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확실히 무리가 있다. 본래 코미디 영화는 ‘바다를 건너’ 먹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국지적 문화나 사회색이 드러나게 돼있어 이입이 쉽지 않다. 같은 콘셉트더라도 한국영화로 만들어 한국 대중에게 내놓았을 때에는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에선 ‘어정쩡한 콘셉트’가 잘 안 먹힌다는 판단도 있을 수 있다. 팬터지면 화끈하게 별세계로 가고, 나머지는 모두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일정부분 맞는 이야기지만, 코미디 장르는 본래 허용범위가 크다. 웃고 즐기며 별 생각 없이 관람하러 극장을 찾은 관객은 그렇게까지 명확한 장르 구분은 안 한다. 이런 식의 팬터지형 코미디는 가능성이 높다. 별달리 돈을 들이지 않고 규모를 키우지 않아도 ‘중급’ 냄새가 줄어든다. 일단 팬터지형이라는 콘셉트 하나만으로도 어딘지 ‘산뜻한 장르’로 여겨질 수 있다. 마케팅도 나름대로 수월하다. 아이디어형 콘텐츠는 단 한줄 카피로도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이 밖에도 코미디 영화는 갖가지 시도들을 해볼 필요가 있다. 신분위장 코미디도 다시 살려볼 만하다. 사회계층이 뒤바뀌며 벌어지는 해프닝은 코미디도 아닌 스릴러 ‘더 게임’도 성공시켰다. 계급 간 갈등이 심해지는 경제불황기라면 더더욱 밀어볼 만하다. ‘다찌마와리’ 실패에도 불구하고, 패러디 코미디 역시 다시 재조정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마니아적 이어붙이기가 아니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들을 패러디하는 방식이라면 ‘재밌는 영화’ 정도 성공도 내다볼 수 있다. ‘성인 남자가 어린이를 돌보는’ 미국식 서브 장르도 시도해 볼만하다. 엽기녀 콘셉트 역시 ‘달콤?移墟?연인’처럼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면 시장이 열린다. 코미디 영화가 무너진 시장은 여러모로 위험한 시장이다. 단순히 중급 영화 생존이라는 점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영화계가 대중 정서를 정확히 캐치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홍콩영화의 실패는 대형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코미디영화들이 차례로 불발되면서 벌어졌다. 한국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시급히 코미디 영화를 재편하는 작업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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