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 귀맛 들이면 미치도록 듣게 될 것 같은 연주
조진주의 네 번째 음반…전곡 생상스 작품으로 채워
굵으면서 까칠한 음색, ‘조진주 사운드’의 진수
스윽 스윽 칼을 가는 듯한 연주다. 게다가 자기 소리가 뚜렷하다.조진주의 네 번째 음반…전곡 생상스 작품으로 채워
굵으면서 까칠한 음색, ‘조진주 사운드’의 진수
듣는 순간 알았다. 이 사람의 연주는 호불호가 분명할 것이라는 것을. ‘불호’인 사람은 더 이상 듣지 않겠지만, ‘호’인 사람은 미치도록 듣게 될 것이다.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경연장 같은 곡. 일류치고 이 곡을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바이올린의, 바이올린에 의한,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다. 악기 바꿔 연주하기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요즘이지만, 이 곡만큼은 그 어떤 악기로 연주해도 바이올린을 대체할 수 없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11월에 출시된 그의 네 번째 음반의 첫 번째 트랙곡이다. 음반을 생상스의 작품들로만 채웠고, 그래서 타이틀도 ‘생상스’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이 음반의 타이틀곡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생상스가 자신보다 한창 나이가 어린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데 사라사테를 위해 작곡한 곡. 프랑스 작곡가가 스페인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썼기에 두 나라의 감성이 물과 잉크처럼 섞여 있다. 여기에 이탈리아도 슬그머니 끼어든다. ‘카프리치오소’는 ‘변덕’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탈리아어다.
이들이 가진 ‘함께 또 따로’의 미묘한 느낌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도 연주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조진주의 연주는 도발적이다. 자칫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기교의 과시로 치달을 수 있는 이 곡을 고속도로 위의 스포츠카처럼 질주한다. 한 점 의심이 들지 않는 호쾌한 연주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일류다운 기교로 가득하지만 막상 연주에서는 도드라지지 않는다. 기교는 자동차가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안에서 부품으로서만 기능하고 있다. 청자들은 그저 조진주라는 이름의 이 멋진 스포츠카가 선보이는 눈부신 퍼포먼스를 넋 놓고 바라볼 뿐이다.
여기에 음색을 빼놓을 수 없다. 조진주의 현과 활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상당히 독특해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펜으로 치면 촉의 끝이 살짝 갈라져 있다. 이 미묘한 차이가 굵으면서도 어딘지 까칠한 느낌의 ‘조진주 사운드’를 완성한다. 조진주는 이 매력적인 소리를 곡의 전체가 아닌, 포인트 부분에만 적용해 입체감을 더하고 있다.
조진주와 합을 맞춘 아파시오나토 앙상블은 조진주의 사운드에 특화된 듯 완벽하게 동행한다. 역시 힘차고 뼈대가 굵은 사운드로 듣는 이의 귀와 심장을 곧바로 직결시킨다. 지휘자는 완벽하게 조진주의 연주와 해석을 이해하고 있다.
이 음반에는 생상스의 또 다른 바이올린 명작인 협주곡 3번 B단조도 수록되어 있다. 1악장 역시 명연으로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처럼 시원시원한 연주다.
※ 이 코너는 최근 출시된 음반, 앨범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코너의 타이틀 ‘나명반’은 ‘나중에 명반이 될 음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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