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뛰기 혁명 ‘배면뛰기’ 창시, 딕 포스버리 76세로 사망

입력 2023-03-14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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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딕 포스버리가 배면뛰기를 하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높이뛰기에 일대 혁명을 불러온 배면뛰기, 이른바 포스버리 플롭(Fosbury flop)을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처음 시도해 금메달을 목에 건 미국의 육상선수 딕 포스버리가 7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고인의 홍보담당자는 포스버리가 림프종이 재발해 12일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AP통신, 가디언 등에 따르면 포스버리 이전 높이뛰기 선수들은 바와 평행하게 달려가 배를 아래로 향하게 해 바를 넘는 게 너무나 당연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포스버리는 비스듬히 출발해 등이 바를 향하게 도약한 후 몸을 ‘J’자 모양으로 구부리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그는 2.24.m를 넘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시상대 맨 위에 섰다.

포스버리는 다시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그의 기술은 단숨에 해당 종목을 지배하게 되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4년 후인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출전선수 40명 중 28명이 포스버리가 선보인 배면뛰기로 바를 넘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포스버리 플롭이 아닌 다른 기술로 높이뛰기에서 우승한 마지막 올림픽이 됐다.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배가 아래로 향하는 높이뛰기 기술은 올림픽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육상 단거리 슈퍼스타 출신 마이클 존슨은 트위터에 “세계 전설이라는 말이 너무 자주 쓰이는 것 같다”며 “딕 포스버리는 진정한 전설이었다! 그는 당시에는 미친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표준이 된 기술로 해당 종목을 영원히 바꿨다”고 고인을 극찬했다.

포스버리의 사례는 단순히 높이뛰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비즈니스 리더와 대학교수들이 혁신과 기회를 포착하고 틀을 깨려는 의지에 대한 연구로 자주 활용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높이뛰기 준우승자 에릭 키나드 주니어는 “말 대로 천재적인 기술이다”라며 “물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당시에는 그렇게 위험한 것을 고려하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당시의 장비로 인해 시도하기에는 약간 위험천만한 일 이었다”고 말했다.

포스버리는 2012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올림픽 우승 이후 “모든 관심을 감당하는 데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너무 과했다. 나는 작은 마을에 살던 아이였는데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 관심은 좋았지만 어느 순간에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관심 때문에 정신적으로 지쳤다.”

하지만 포스버리는 금메달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며 “금메달은 내게 금전적 보상이 아닌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대통령들과 왕들을 만났고, 세상을 보았으며, 훌륭한 사람들과 삶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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