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가 준비한 사물놀이단의 신명나는 환대에  여수에 입항한 초대형 크루즈 ‘스펙트럼 오브 더 시즈’ 탑승객들이 즐거워 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준비한 사물놀이단의 신명나는 환대에 여수에 입항한 초대형 크루즈 ‘스펙트럼 오브 더 시즈’ 탑승객들이 즐거워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63빌딩을 가로로 눕히면 이런 느낌일까. 항구에 모습을 드러낸 선체를 올려다보며 눈과 가슴이 동시에 웅장해졌다. 전장 347m.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높이가 555m라니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시라. 16만8670톤이라는 숫자는 체감조차 되지 않는다. 바다 위의 도시 하나가 통째로 움직인다고 보면 맞다.

로얄캐리비안의 초대형 크루즈 ‘스펙트럼 오브 더 시즈(Spectrum of the Seas)’호 이야기다. 승객 5200여 명과 승무원 1500여 명을 합쳐 6700여 명을 태운 이 거대한 괴물이 5월 12일 부산에 이어 13일 여수항에 닻을 내렸다.특히 이번 여수 입항은 로얄캐리비안 선사가 2016년 이후 10년 만에 여수를 기항지로 다시 편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초대형 크루즈의 웅장한 고동 소리가 여수 앞바다의 낭만 위에 울려 퍼지게 됐다.

‘스펙트럼 오브 더 시즈’호에서 내려 관광을 떠나는 탑승객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스펙트럼 오브 더 시즈’호에서 내려 관광을 떠나는 탑승객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 부산 서면에 뜬 ‘K-뷰티 셔틀’, 선원들의 마음을 훔치다
이번 크루즈 입항 현장은 공기부터 달랐다. 손님맞이 이상의 에너지가 넘쳤다. 한국관광공사는 근사한 전략을 들고나왔다. 이름하여 ‘전용 K-뷰티 셔틀버스’다.

재미있는 점은 이 버스의 타깃이 승객뿐만 아니라 선원까지 확장했다는 거다. 크루즈 한 대에 탑승한 승무원만 1500명이 넘는다. 이들이 기항지에 내리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쇼핑? 맛집? 다 좋다. 그런데 하나 더 있다. 짧은 자유시간 동안 가장 효율적으로 자신을 가꾸고 싶어 한다. 한국관광공사는 이 니즈를 정확히 꿰뚫었다.

건조한 피부 개선을 위한 맞춤형 크라이오 수분 관리를 체험하고 있는 비키 말돈씨.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건조한 피부 개선을 위한 맞춤형 크라이오 수분 관리를 체험하고 있는 비키 말돈씨.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부산항 크루즈터미널(북항)에서 서면 메디컬스트리트를 왕복하는 셔틀버스 5대를 풀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30분 간격으로 부지런히 날랐다. 사람들은 버스에 몸을 싣고 서면으로 달려가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피부 관리를 받았다. 호주에서 온 비키 말돈 씨는 “틱톡 등 SNS에서 K-뷰티 제품 관련 콘텐츠를 접하며 호기심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개인별 피부 타입과 고민을 세심하게 고려한 맞춤형 관리를 받아 대단히 만족스러웠다”며 “셔틀버스가 목적지까지 편하게 데려다주니 사람들의 하선 욕구가 대단히 높을 것 같다”고 말했다.

브리애나 자오씨가 K-헤어살롱을 찾아 한국식 스타일링을 경험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브리애나 자오씨가 K-헤어살롱을 찾아 한국식 스타일링을 경험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친 브리애나(왼쪽)씨와 에바씨 모녀가 화사해진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친 브리애나(왼쪽)씨와 에바씨 모녀가 화사해진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캐나다에서 온 모녀 브리애나와 에바 씨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딸 브리애나 씨는 “샴푸 과정에서 목과 두피 마사지까지 받아 머릿결이 부드러워진 게 느껴진다”며 “K-뷰티 메이크업은 기존 스타일보다 훨씬 가볍고 자연스러워서 신선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엄마 에바 씨 역시 “왜 K-뷰티가 인기가 많은지 체감했다”며 “딸과 함께 예쁘게 꾸민 모습으로 부산 관광을 즐길 수 있어 행복하고, 캐나다 동료들에게도 이 사례를 꼭 소개하고 싶다”며 웃어 보였다.

셔틀버스 안의 분위기는 상기되어 있었다. 한 승무원은 “기항지에서 선원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아 터미널 근처만 맴도는 경우가 많았다”며 “전용 셔틀을 타고 한국의 유명한 뷰티 거리로 바로 갈 수 있다니 꿈만 같다”고 전했다.

● ‘흑백요리사’ 열풍 타고 화엄사로 간 크루즈족
여수항의 풍경은 또 다른 의미로 장관이었다. 로얄캐리비안 크루즈 손님을 10년 만에 다시 맞이한 여수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한국관광공사가 던진 승부수는 ‘화엄사 사찰음식 체험’이었다. 최근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2’로 전 세계적 관심을 받는 사찰음식을 크루즈 관광과 짭짤하게 버무렸다.

지리산의 품으로 스며들기 좋은 날. 여수항에서 버스로 달려 도착한 지리산 화엄사. 사방이 자연으로 둘러싸인 풍경 속에 숲의 짙은 초록빛 나무들이 사찰 건물과 어우러져서 인상적이었다. 영국에서 온 에마 데이비슨 씨는 사찰의 압도적인 평온함에 넋을 잃었다. “전문적인 영어 가이드 덕분에 한국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했고, 거대 불상이 안치된 공간에서 느낀 평온함은 잊을 수 없다”는 그는 “영국에서 김밥을 먹어보긴 했지만 100% 채소로 만드는 법은 몰랐는데, 이번 체험이 정말 유익했다. 돌아가면 꼭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사찰음식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는 화엄사 방문객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사찰음식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는 화엄사 방문객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화엄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방문객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화엄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방문객들.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호주인 크레이그 앤더슨 씨 역시 조화로운 건축물과 자연에 감탄했다. “이전까지는 한국 음식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 체험을 통해 신선한 재료뿐만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공감하게 됐다”는 그의 말에선 울림이 느껴졌다. 10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크루즈 손님들에게 여수는 가장 한국적인 쉼을 선물했다.

● 일본 갈 배를 한국으로… 관광공사의 ‘밀당’ 성공기
사실 이번 기항은 운이 아니다. 치밀한 전략의 결과다. 한국관광공사는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포착했다. 기존 중국-일본 노선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로얄캐리비안 사장단을 설득해 뱃머리를 한국으로 돌리게 했다.

2025년 4월 마이애미 박람회부터 시작된 밑 작업은 끈질겼다. 제주, 부산, 인천은 물론이고 여수라는 신규 방안을 제시하며 선사를 공략했다. 그 결과 2025년 9회에 불과했던 로얄캐리비안의 한국 기항은 2026년 66회로 7배 넘게 뛴다. 크루즈 관광객 24만9000명을 추가로 유치하고 약 630억 원의 소비를 기대할 수 있는 규모다.

한국관광공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중국 최대 국영 선사인 아도라(Adora) 크루즈와도 손을 잡았다. 3월에는 전략적 파트너십도 체결했다. 아도라의 한국 기항도 2025년 101항차에서 2026년 212항차로 2배 이상 늘어난다. 방한 크루즈 200만 시대가 코앞이다.
맞춤형 K-뷰티 스킨케어 체험을 위해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맞춤형 K-뷰티 스킨케어 체험을 위해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 2030년 방한관광객 3000만 명을 향한 항해

크루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한 번에 수천 명이 내린다. 이들이 지역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시장에서 기념품을 사고 셔틀버스를 타고 도심을 누빈다. 지역 경제의 볼륨을 키우는 동력이 된다.

한국관광공사 한여옥 국제관광콘텐츠실장은 “로얄캐리비안과의 공동 마케팅을 통해 고부가 관광상품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공사는 앞으로도 아도라 선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한국을 동북아 크루즈 관광의 메카로 키워나가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2030년까지 크루즈 관광객 300만 명 유치.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바다 위 도시들이 연이어 한국의 항구로 밀려드는 광경은, 이제는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과제는 남았다. 7000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때를 대비해 안내 체계, 모바일 페이 결제 편의성 등 디테일을 더 다듬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부산과 여수에서 확인한 가능성은 명확했다. K-콘텐츠라는 엔진이 뜨겁다. 거친 파도를 뚫고 나가는 야수처럼, 한국 크루즈 산업도 거침없이 바다를 가를 채비를 마쳤다. 방한관광객 3000만 조기 달성. 이제 바다에서도 풀 스로틀을 당길 때가 왔다.

[여밤시] 여행은 밤에 시작된다. 캐리어를 열고, 정보를 검색하고, 낯선 풍경을 상상하며 잠 못 드는 밤. 우리들의 마음은 이미 여행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