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해외 교육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는 세계사·지리 교과서 7종을 분석한 결과, 아프리카를 유럽 중심 시각에서 설명하거나 정치·사회적 문제의 집합으로 단순화하는 편견적 서술이 구조적으로 반복되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해외 교과서 시정 캠페인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반크는 해당 교과서들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고등학교 정규 수업과 국제학교, 대학 입시 과정에서 사실상 ‘표준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서술 방식이 전 세계 학습자의 아프리카 인식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반크가 그간 진행해 온 ▲국내 교과서 속 아프리카 왜곡 시정 ▲해외 사전 및 디지털 백과사전 내 편견 표현 시정 활동에 이은 것으로, 글로벌 교육 현장에서 실제 활용되는 해외 교과서를 대상으로 한 첫 체계적 조사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조사 대상에는 Pearson, McGraw Hill 등 미국 주요 출판사의 세계사·지리 교과서와 AP(World History) 시험 대비 교재 시리즈 등 다수의 교육 자료가 포함됐다.
역사적 행위자에서 배제되는 아프리카 서술 구조
반크 조사에 따르면 해외 세계사 교과서 상당수는 아프리카를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온 행위자로 조명하기보다, 외부 세력에 의해 변화가 발생하는 수동적 대륙으로 반복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Pearson 출판 『World Cultures: A Global Mosaic』에서는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설명하는 단원에서 “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제시하며, 사건의 출발점을 유럽의 시각에 두는 서술 방식을 취했다. 이는 아프리카 사회의 역사적 맥락보다는 서구의 문제의식을 기준으로 세계사를 이해하도록 학습자의 관점을 유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삼은 이유를 ‘기후에 더 잘 견딜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하면서 식민 지배 정당화의 인식을 반영한 서술이 등장했으나 이에 대한 명시적인 비판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McGraw Hill 출판 『Exploring Our World: People, Places, and Cultures』 역시 노예제를 유럽의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한 선택으로 설명하며, 노예무역을 경제 활동의 한 과정으로 묘사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당한 강제성·폭력성·인권 침해는 상대적으로 축소됐고, 노예제 폐지 역시 유럽 국가의 결정과 판단 중심으로 서술돼 아프리카는 다시 한번 역사적 주체에서 배제됐다. 식민지 분할과 제국주의 확산을 다루는 대목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반복됐다. 교과서는 제국주의를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우위 확보라는 목적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식민 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과 강제성, 지역 사회의 피해와 저항은 부차적인 요소로 처리했다. 그 결과 세계사 변화의 중심은 유럽에 놓이고, 아프리카 사회는 주변부로 밀려나는 서술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평가다.
반크의 분석 결과, Barron’s 출판 『AP World History: Modern PREMIUM』 역시 아프리카를 수동적으로 서술하는 기존 경향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교재는 아프리카를 스스로 정치·경제적 변화를 만들어 온 주체로 제시하기보다, 유럽의 진출과 개입을 계기로 변화가 발생하는 공간으로 설정하는 방식이 반복됐다. 특히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 단원에서 유럽 국가들의 전략과 세계 질서 변화는 비교적 상세히 다뤄진 반면, 아프리카 사회가 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제한적으로 서술됐다. 반크는 이러한 서술 구조가 식민 지배를 역사적 필연처럼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완화된 언어로 재현되는 폭력의 역사
교재에 사용된 표현과 어휘 선택에서도 아프리카에 대한 구조적 편향이 드러났다. 반크는 ‘변화(change)’, ‘영향(effect)’, ‘확산(expansion)’, ‘만남(encounter)’, ‘발전(development)’과 같은 중립적·긍정적 표현이 침략, 강제노동, 대량 학살, 인종차별 등 폭력적 현실을 완화하거나 가리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어휘는 사건의 결과를 중심으로 서술을 구성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와 책임을 흐릿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Pearson 출판 『The Heritage of World Civilizations: combined volume 7th edition』 에서는 노예무역이 아프리카 사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하면서도, 동시에 노예무역 기반 교류가 신대륙의 문화와 종교를 “풍요롭게 만들었다(enriched)”라는 표현을 반복 사용했다. 반크는 이 같은 표현이 피해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결과적 ‘발전’에 초점을 맞춰 폭력성을 희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McGraw Hill 출판 『Exploring Our World: People, Places, and Cultures』의 경우, 현대 아프리카를 다루는 단원에서 ‘아프리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라는 제목이 사용되며, 아프리카를 일관되게 ‘지원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서술 구조가 나타났다. 빈곤과 문제 상황이 집중적으로 제시되는 반면, 아프리카 사회 내부의 자율적 대응과 변화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는 것이다.
Barron’s 출판 『AP World History: Modern PREMIUM』에서도 아프리카 사회를 설명할 때 ‘부족’, ‘전통적’, ‘지역적’이라는 표현이 빈번하게 사용됐으며, 이를 현대적 정치 체계나 복합적 사회 구조와 연결하는 설명은 제한적이었다. 또한 ‘primitive’, ‘backward’, ‘underdeveloped’와 같이 발전 단계의 결핍을 전제하는 표현이 반복되며, 아프리카를 서구 기준에서 ‘뒤처진 공간’으로 고정할 위험이 지적됐다. 정치·사회적 갈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tribal conflict’, ‘tribal hatred’와 같은 표현이 사용되며, 르완다 집단학살과 같은 비극적 사건이 복잡한 역사·정치적 맥락보다는 ‘부족 간 대립’으로 단순화될 가능성이 나타났다. 반면 식민 지배 시기 유럽 열강이 민족 구분을 인위적으로 제도화한 배경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일반화·단일화되는 아프리카 역사 서술
반크는 아프리카 관련 서술에서 정보 부족에 따른 일반화·범주화·단일화 경향도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교과서 전반에서 아프리카는 지역·시기·정치 체계의 차이 없이 하나의 단일한 사회로 묶여 설명됐으며, “아프리카는…”으로 시작하는 일반화된 문장이 반복됐다. 구체적으로는 서구 열강의 산업화·전쟁·정치사는 길고 다층적으로 서술되는 반면, 아프리카의 사회 구조, 사상, 독립운동, 내부 정치사는 상대적으로 짧게 다뤄졌다. 반크는 이러한 분량의 차이가 단순한 정보량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중요한 역사’로 판단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치 판단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Pearson 『World Explorer: People, Places, and Cultures』 교과서는 탈식민기 아프리카의 정치적 혼란을 설명하면서 냉전 개입, 인위적 국경 분할, 경제 종속 구조 등 외부 요인을 충분히 다루지 않은 채, 혼란의 원인을 ‘아프리카 자체의 미성숙’으로 일반화하는 서술을 보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역시 ‘제도적·법률적 조치’ 중심으로 설명돼, 실제로 자행된 국가 폭력과 강제 이주, 테러는 축소됐다.
McGraw Hill 『Exploring Our World: People, Places, and Cultures』에서는 아프리카 독립을 “약화된 유럽 국가들이 이를 막을 자원이 없었기 때문”으로 설명하며, 아프리카 내부의 무장 투쟁과 정치적 조직화는 가시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로 인해 독립은 능동적으로 쟁취한 결과가 아니라 외부 조건 변화에 따른 수동적 결과로 인식될 위험이 제기됐다.
이미지·지도 자료에서도 반복되는 아프리카 정보 왜곡
이 같은 분량·내용상의 편향은 교과서에 수록된 이미지와 시각 자료에서도 확인됐다고 전했다. 반크에 따르면 McGraw Hill 출판『Exploring Our World: People, Places, and Cultures』 속 아프리카 관련 이미지는 주로 흑인 인물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빈곤, 질병, 분쟁, 전통적 생활상을 강조하는 사진이 다수 사용됐다.
반크는 이러한 이미지 구성이 아프리카를 단일한 인종과 문화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으며, 대륙이 지닌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아프리카는 다양한 민족과 언어, 문화적 배경이 공존하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이미지는 이를 단순화해 고정된 이미지로 재현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지리 교과서의 경우, 아프리카 단원에만 문제 상황을 묘사한 이미지와 질문이 집중적으로 배치되면서, 아프리카를 ‘항상 설명이 필요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아울러 반크가 그간 문제를 제기해 온 세계지도 표현 방식 역시 이번 조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부 교과서 Penguin 출판『THE PENGUIN STATE of the WORLD ATLAS 』, Barron’s 출판『AP World History: Modern PREMIUM』과 『How to Prepare for the SAT 2 World History』에서는 메르카토르 도법을 그대로 적용한 세계지도가 사용되면서, 아프리카 대륙의 실제 면적과 비중이 축소돼 표현된 사례가 다수 발견된 것이다. 반크는 메르카토르 도법이 항해 목적에는 유용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활용될 경우 대륙 간 상대적 크기를 왜곡해 학습자의 공간 인식을 오도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 실제로 반크가 분석한 교과서 상당수에서 아프리카의 면적이 축소된 형태로 표기된 지도가 반복적으로 수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사를 보다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한 점검
반크는 이번 조사를 통해 해외 세계사 교과서 속 아프리카 서술이 ▲서술 주체 배제 ▲식민 지배 정당화 구조 ▲표현의 편향 ▲아프리카 역사 정보 부족 ▲분량과 이미지 구성의 편향 등 복합적인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이번 반크의 움직임은 특히 해외 교과서에 수록된 아프리카 서술을 한국의 청년 연구자들이 직접 분석하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식민지 경험을 지닌 국가의 시민으로서, 세계사 교육 속 특정 대륙의 재현 방식이 갖는 구조적 문제를 점검하고 이를 국제 교육 현장의 과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예래 반크 청년연구원은 “해외 교과서는 단순한 학습 자료를 넘어, 특정 국가와 지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형성하는 공적 담론의 성격을 지닌다”라며 “특히 세계사·지리 교과서는 학생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기본 틀을 만드는 만큼, 그 안에 포함된 서술 방식과 표현 선택은 장기적으로 국제 사회에 대한 인식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대륙이 반복적으로 왜곡된 시각이나 단편적 이미지로 재현될 경우, 이는 개인의 오해를 넘어 집단적 편견으로 고착될 위험이 있기에 국제 교육 현장에서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글로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반크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는 단편적인 표현 오류를 넘어, 세계사 서술의 구조 전반과도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다. 백시은 반크 청년연구원은 “이번 분석은 일부 오류를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 아프리카가 세계사에서 구조적으로 수동적 존재로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교과서 속 아프리카는 스스로 선택하고 저항하는 역사 주체라기보다 외부에 의해 변화 당하는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로 인해 식민 지배와 노예무역의 폭력은 중립적 언어로 완화되고, 아프리카 사회 내부의 주도성과 대응은 가시권 밖으로 밀려난다”라며 “국제적으로 활용되는 교재라는 점에서 해당 교과서의 서술 속 포함된 관점과 언어, 정보의 배치 방식은 개인의 인식을 넘어 국제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역사 서술의 균형 문제는 개별 교과서의 표현을 넘어, 세계사 교육 전반의 구조와 방향성이라는 보다 넓은 맥락에서도 제기됐다. 이세연 반크 청년연구원은 “역사적 사건은 단일 요인이 아닌 복합적인 정치·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만큼, 아프리카 내부의 관점과 경험은 물론 외부 세력의 영향까지 균형 있게 서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한국은 식민지 경험과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은 국가로서 역사 서술의 공정성과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에, 아프리카 편견 문제를 국제사회에 제기하는 것은 정확한 역사 인식과 상호 존중에 기반한 공공외교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는 특정 지역을 대변하는 차원을 넘어, 글로벌 교육 환경 전반의 서술 기준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해외 교과서 속 한국 역사 왜곡을 바로잡아 온 반크가 아프리카 서술까지 점검에 나선 것은 글로벌 시민사회의 책임을 확장하는 과정”이라며 “특정 지역을 문제나 지원의 대상으로만 그리는 서술에서 벗어나, 세계사가 보다 균형 있게 구성되도록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단기적 시정을 넘어 국제 교육 현장에서의 인식 구조를 바꾸는 데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반크는 지난해 국내 교과서에 포함된 아프리카 관련 서술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시정 캠페인을 전개한 바 있다. 그 결과 교육부는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8종에서 아프리카를 빈곤과 기아 중심으로 설명하던 기존 서술을 완화하고 인구 규모, 기술 발전, 한국과의 교류 사례 등을 보강하는 개선 조치를 시행했다. 이는 교과서 서술 방식이 공적 문제 제기와 검증 과정을 통해 실제로 수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크는 이러한 국내 교과서 시정 경험을 토대로, 이번 해외 교과서 분석 결과 역시 출판사와 교육기관에 공식적으로 공유하고 구체적인 시정 요청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국제 시민단체와 국제기구들과의 협력을 통해 해외 교육 현장에서 반복돼 온 아프리카 서술의 구조적 편향을 점검하고, 세계사 교육 전반이 보다 균형 잡힌 시각 위에서 구성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시정 활동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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