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연승으로 욱일승천하는 차범근 수원 감독은 “덕장, 용장보다 무서운 승운이 내편”이라는 명언으로 현재 그의 심정을 밝힌 바 있다. 그저 언론에 대한 립 서비스나 겸손의 상투적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차 감독의 놀라운 득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말에서 덕장, 용장, 지장도 아니면서 지독한 운을 타고 태어난 히딩크 감독의 그림자를 본다. 사람들이 오대영(5-0 패배를 비꼬는 별명)이라며 놀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히딩크는 한국, 호주를 거쳐 러시아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 축구 변방 호주가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것도, 유로 2008 예선에서 러시아가 잉글랜드를 몰락시킨 것도 히딩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독하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 승운이라는 게 뭘까. 수원의 연승가도를 분석해보면, 수비진의 안정, 미드필드의 압박, 빠른 역습, 공격진의 결정력, 신인들의 약진 등을 꼽을 수 있다.이대로 간다면 울산, 성남이 갖고 있는 K리그 최다연승(9승) 경신도 가능할 것이라고 언론은 난리다. 수원의 연승에는 전술이 달라진 것도, 선수가 크게 보강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김남일, 안정환, 나드손 등 소위 중량감 있는 선수들은 팀을 떠났다. 전술 운용의 특이한 변화도 감지하기 힘들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송종국이 현재 수원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지금 수원 분위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표팀과 똑같다.” 답은 거기에 있다. 송종국은 단순히 분위기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엔 분위기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보통 성취욕이 적은 선수들을 데리고는 ‘연패’라는 늪을 피하거나 ‘연승’이라는 기록을 올리기 쉽지 않다. 선수들은 기계가 아니다. 돈이 없고 가난하던 시절엔 승리수당, 출전수당, 득점수당 등 온갖 당근이 그들을 뛰게 만들었다. 돈이 동기부여의 모든 것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선수들에겐 충분한 명예와 돈이 있다. 그들에게 경기장에서의 헌신을 끌어내려면 더 큰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수원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 구단 중의 하나다. 선수들은 절대 돈에 궁하지 않다. 차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선수 운용의 폭을 넓히며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수원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그리고 승운은 차 감독에게 찾아왔다. 선수들은 차분히 8연승, 9연승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10연승까지는 이제 3경기가 남았다. 수원은 김남일, 안정환 등을 내보내면서 선수 수당 체계를 손보았다고 한다. 혹이나 차 감독의 놀라운 득도를 ‘수당 체계 변경’으로 인한 반짝 효과라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이다. 차 감독의 말이 맞다. 감독이 잘나서 팀이 잘 되는 건 아니다. 그저 선수들이 배고픔을 느끼게 해주면 된다. 수원 연승의 원동력은 선수와 감독, 스태프의 신뢰감이 ‘덕장, 용장보다 무서운 승운은 내편’이라는 표현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지도자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재훈 대한축구협회 기술부장. 호남대 스포츠레저학과 겸임교수 2003년 1년간 부천 SK 프로축구 지휘봉을 잡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또 깨우쳤다. 당시 느꼈던 감독의 희로애락을 조금은 직설적으로 풀어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