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를 돌던 불혹의 노장은 1루 근처에서 종종걸음을 치며 자그맣게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성갑 1루코치와 손뼉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할 무렵, 주름 많은 그의 입가에는 유난히 더 선명한 주름이 잡혔다.
우리 히어로즈의 김동수(40). 현역 최고령 타자이자 역대 최고령 포수인 그가 마침내 개인통산 200호 홈런을 터뜨렸다.
김동수는 15일 대구 삼성전에 8번 포수로 선발출장해 7-0으로 앞선 5회초 2사 1루서 곽동훈의 초구 몸쪽 낮은 커브(시속 115km)를 잡아당겨 왼쪽 관중석 상단에 타구를 꽂아 넣었다. 앞선 2타석에서 연속 2루타를 날린 뒤 맛본 짜릿한 감촉이었다.
현대 시절인 지난해 8월 15일 수원 한화전에서 권준헌을 상대로 199호 홈런을 때린 뒤 무려 335일 동안 묵혀두었던 홈런포였다. 90년 LG에 데뷔해 19년째 달성한 값진 기록. 역대 포수 중에서는 이만수(252홈런)와 박경완(286)에 이어 3번째 200홈런 달성자로 기록됐다.
길고 길었던 시간만큼 숨은 사연도 많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경기에 앞서 예상달성기록을 뽑아 보도자료를 만드는데 매일 ‘김동수 200HR(-1)’라는 문구가 올라있었다. 현대에서 우리로 넘어오면서도 매일 축하 꽃다발도 준비됐다. 비용도 만만찮아 5만원짜리가 나중에는 3만원짜리로 바뀌기도 했다.
김동수는 5월초 프런트에 “차라리 조화를 준비하라”고 농담하면서 “이제 꽃다발을 준비하지 마라”고 했다. 그래서 이날 축하 꽃다발도 없었다.
김동수는 연봉이 지난해 3억원에서 2억2000만원이나 깎였다. 무려 73.3%의 삭감. 지난해 안방을 책임지며 타율 0.278, 111안타를 기록하며 분전한 그에게는 프로 데뷔 후 가장 큰 수모였다. 또한 세대교체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올 시즌 초 강귀태에 밀려 안방에 앉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강귀태가 급성간염으로 뛸 수 없는 처지가 되면서 6월 12일부터 선발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20승 37패로 꼴찌로 처져있던 팀은 이후 그가 선발로 출장했을 때 15승11패를 올리면서 상위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안정적인 팀으로 변모했다. 김동수는 “사실 200홈런이 은퇴하기 전에 나오려나 했는데 이제야 한시름 덜게 됐다. 하루 하루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겠다”며 웃었다.
이광환 감독은 “동수 홈런이 올해 안에 나오려나 했는데 오늘은 승리 이상으로 기쁘다. 오늘밤 숙소에서 김동수 200홈런 축하파티를 하기로 했다”며 기뻐했다.
대구=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