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금메달리스트황경선,아테네銅에엉엉…오기로만든金

입력 2008-08-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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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인신매매의 광풍이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딸 둘을 둔 아버지는 ‘여자도 자기 몸 하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내성적인 둘째가 걱정이었다. 여섯살 때 처음 도복을 입혔다. 언니 손을 잡고 도장에 다니던 딸은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 독기 초등학교 5학년 태권왕대회 결승. 황경선(22·한체대)은 준결승에서 엄지발가락 인대가 상했다. 뼈가 튀어나와서 보일 정도였다. 꼭 뛰겠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윤성환 관장은 기권을 선언했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며 황경선은 사이렌소리보다 더 크게 울었다. 처음에는 아파서 그런 줄 알았다. 황경선은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출전을 안 시켜줘서 졌다”며 서러워했다. 윤 관장은 열한 살 꼬마의 빛나는 눈을 봤다. 그 때 이미 세계정상을 예감했다. 발가락은 아물었지만 독기는 남았다. 그 해 겨울, 포천 산정호수를 찾았다. 얼음을 깨고, 몸을 담그는 극기 훈련. 황경선은 물 속에 들어가기 전 허세를 부리는 사내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풍덩.’ 호들갑을 떨며 나오는 순번은 말 많던 순서와 같았다. 그만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뒤에야 황경선은 유유히 나왔다. 수차례의 부상을 이겨낸 강한 정신력은 그 때부터 꿈틀댔다. ● 패배와 부상의 아픔을 딛고 2004년, 태권도사상 최초로 고교생올림픽대표가 된 황경선은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경기 당일, 황경선의 남양주 집에는 취재진들이 진을 쳤다. 하지만 16강전에서 패하자 수많은 카메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아버지 황도구(48)씨는 그 때의 설움은 잊을 수가 없다. 18세 소녀에게도 3등의 아픔은 가혹했다. 공항부터 금메달이 아니면 찬밥신세. 운동에 대한 회의까지 들었다. 벼랑 끝에서 오기가 생겼다. 매정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은 ‘1등을 하는 것 밖에 없다’며 2008년을 기약했다. 하지만 시련은 다시 한 번 찾아왔다. 2006년 내측무릎인대가 끊어지고 연골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가볍게 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사이클, 물리치료, 마사지. 하루 종일 지루한 재활이 반복됐다. 발차기가 그리워 눈물이 났다. 황경선은 “그 때 내가 얼마나 태권도를 사랑하는지 알았다”고 했다. 몸이 낫자 하기 싫은 훈련이 없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즐기는 선수를 당할 자는 없었다. ● 인격도 금메달 도복을 벗은 황경선은 한 없이 여리다. 2005하계유니버시아드. 황경선의 발차기가 멕시코 선수의 얼굴에 꽂혔다. 상대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황경선은 며칠간 그 장면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멕시코 선수가 무사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뒤에야 마음이 놓였다. 멍든 다리를 보면 부모님의 마음이 아플까봐 집에서는 반바지도 입지 않는다. 태릉에서는 파트너선수를 맡는 후배들의 성인식을 챙겨 줄 정도로 속이 깊다. 황경선은 “아테네의 실패 이후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됐다”고 했다. 베이징=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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