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참 묘하다. 위임받았을 뿐인데 자기 소유인양 착각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신상우 총재는 어쨌든(?) 8개 구단 합의의 산물이었다. 쉽게 말해 8개 구단이 불신임하면 총재는 낙마한다. 즉, 총재의 권위는 회원사 구단들의 추대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신 총재가 전 정권의 낙하산이란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야구장에 몇 번이나 갔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느 언론사 기자냐?”고 되묻는 총재였다. 태생부터 비극적, 퇴행적이어도 결과라도 좋았으면 다행이련만 현대 사태, 장원삼 사태에서 봤듯 결단력과 조정력마저 낙제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회원사 절대 다수의 원성이 자자한데도 임기 3년을 거의 다 채웠다. 일반기업 CEO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다 KBO가 한 마리 탐욕스런 돼지에 의해 사유화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처럼 타락했을까. 총재의 권력은 위임받은 것일 뿐인데 왜 전횡을 견제하지 못했을까. 자기 구단이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으면 침묵하고 보는 구단 사장단의 방조와 보신주의에 화살을 돌릴 수밖에 없다. 대표적 사례가 2007년 현대 운영기금 전용과 고갈이다. 130억원에 달하는 돈이 이사회의 투명한 승인절차도 받지 않고 사라졌다. 어디다, 어떻게 썼는지도 불분명하다. 모 사장은 “떠나는 사람, 소송할 수도 없고”라며 쓴웃음만 지었다. 정권이 바뀌고 임기 말이 다가오자 ‘오늘 잘려도 그만’이 된 신 총재는 거의 ‘가미카제’ 수준으로 일을 처리했다. 장원삼 사태에서 봤듯 ‘물러난다’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반대하는 구단을 압박하는 어이없는 본말전도가 벌어졌다. 이 희극적 비극의 씨앗은 취임부터 잉태돼 있었다. 원래 8개 구단이 돌아가면서 총재를 맡기로 합의했고, 1998년 추대된 전임 박용오 총재가 그 첫 테이프를 끊어 KBO는 최초로 정치권과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박 총재 이후 2006년 신 총재가 명분 없이 등장, 역사는 퇴보했고, 원칙은 어그러졌다. 설상가상으로 신 총재가 자신을 추대한 일부 구단과 유착되자 야구계는 사분오열됐다. 한마디로 구단은 실정의 피해자이자 전횡을 방조한 공범자였다. 16일 신 총재가 ‘진짜’ 물러났고, 사장단은 바로 유영구씨를 새 총재로 추대했다. 낙하산을 막기 위한 재빠른 행보다. 정치권의 외압 없이 한국야구의 수장을 추대했다는 점에서 일단 반갑다. 그러나 총재 바꿨다고 구단의 책무가 면피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난 3년의 고통 속에서 깨달았다면 ‘매년 200억 쓴다’고 큰소리만 칠 게 아니라 야구의 백년대계를 고민하는 사장단을 보고 싶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