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골퍼들에게는 핸디캡(Handicap)이 있다. 볼링의 애버리지와 비슷하다. 보기플레이어를 치는 골퍼가 잘 나가다가도 한 홀에서 무너져 90대 스코어로 끝날 때 ‘핸디캡은 못 속인다’고 말한다.
프로들의 핸디캡은 ‘0’이다. 핸디캡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핸디캡이 존재한다. 바로 우승경험이다.
똑같은 상황에 마주했을 때 우승을 해본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가 플레이할 때,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훨씬 유리하다.
11일(한국시간)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미켈롭울트라오픈에서 김송희는 다 잡았던 우승 기회를 한 순간에 날렸다.
15번홀까지 단독 선두를 달리던 김송희는 16번홀에서 한꺼번에 2타를 잃고 추락했다. 세 홀만 버티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김송희에게 남은 세 홀은 지나온 69홀보다 더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앞선 69홀의 플레이에서 김송희는 단 한차례도 더블보기를 기록하지 않았다. 3라운드까지 버디를 무려 15개 뽑아내는 사이 보기는 2개 밖에 기록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됐다.
그토록 안정된 플레이를 펼치던 김송희가 단독 선두로 뛰어오르자마자 무너지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핸디캡이 나타난 것이다. 만약 이전에 우승한 경험을 갖고 있었더라면 더블보기까지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승에 대한 긴장감이 커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윙의 밸런스가 무너진 결과다. 김송희의 자멸에 덕을 본 선수는 베테랑 크리스티 커(미국)다. 투어 통산 11승을 올린 커는 경쟁자의 추락을 지켜보며 차분한 경기를 펼친 끝에 12번째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핸디캡의 차이다.
지난달 26일 끝난 유러피언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단독 선두를 달리던 강성훈은 마지막 18번홀에서 통한의 3퍼트로 우승을 놓쳤다. 버디 기회에서 보기로 무너지며 다 잡았던 우승컵을 빼앗겼다. 우승은 아시안투어의 베테랑 골퍼 통차이 자이디(태국)에게 돌아갔다.
김송희와 강성훈은 모두 프로 데뷔 후 우승을 하지 못한 공통점이 있다.
수억 원의 우승 상금이 걸려 있지는 않지만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이런 일은 흔히 발생한다. 1000~2000 원짜리 내기 골프를 하면서도 부들부들 떨다가 버디 기회에서 보기로 무너지기 일쑤다. 티샷을 페어웨이에 잘 보내놓고 파온에 실패해 허우적대다 더블보기로 무너지는 일도 허다하다.
그래서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선 ‘버디 동생은 보기’라는 말이 유행한다. ‘골프는 99%가 멘탈이고, 나머지 1%도 멘탈이다’고 했다.
우승자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긴장감을 즐기면서 플레이했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골프는 성적에 얽매이기보다 즐기면서 플레이할 때 최상의 결과가 나온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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