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유영구총재님,정수근팬클럽회장입니까

입력 2009-06-13 07: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정수근 복귀 기자회견. 스포츠동아

롯데 정수근이 사면됐다. 개인으로선 잘된 일이다. 동료 조성환의 말처럼 이젠 “필드에서 최선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이 속죄”일 것이다.

그동안 정수근의 복귀를 막는 것처럼 비칠까봐 인간적 고뇌가 있었는데 차라리 시원한 심정도 든다.

그리고 롯데구단. 그들의 ‘돌격 앞으로’식 일처리에 깜짝 놀랐는데 결과적으로 그 방식이 맞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수준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

프로야구 8개 구단은 자기 팀의 이익을 최우선한다.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8개 구단 합의 아래 KBO가 생겼다. 그 수장이 총재다. 구단들의 추대로 지탱되는 구조인 만큼 KBO로선 8개 구단이 수긍할 수 있는 권위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원칙밖에 없다. 미국 MLB나 NBA 총재가 괜히 그렇게 존경받는 게 아니다.

그런데 유영구 총재의 결단을 봤더니 KBO는 8개 구단 ‘민원처리장’밖에 안 되는 모양이다. KBO도 귀가 있으니 처음에 롯데에서 뭐라는 줄 들었을 것이다. “총재께서 정수근을 좋아하니까 풀어 주리라 기대한다.” 유 총재의 리더십을 바라보는 주변의 평가가 고작 이렇다.

하긴 누가 누굴 뭐라 하겠는가? 자업자득인데. 야구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유 총재는 어떤 자리에서 “왜 롯데가 정수근을 풀어달라고 KBO에 빨리 요청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사면권을 쥐고 있는 KBO의 수장이 아니라 개인적인 호감도를 나타내는 정수근 팬클럽 회장이나 할 소리다.

유 총재에게 묻고 싶다. 프로야구는 왜 하는지? 정수근 사면 이후 앞으로 구단들이 총재를 어떻게 보겠는가. 또 나머지 7개 구단은 뭐가 되는가? 어떤 원로의 한탄이 귓가에 남는다. “우리가 어떻게 쌓아올린 프로야구인데….” 여기에 뭐라고 답변할건가?

이제 누가 사고 치더라도 무기한 실격처분이고, 영구제명이고 권위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형평성 운운하면 대응할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랫사람들만 피곤하게 단서조항 만드는 법석도 의미 없다. 어차피 법 위에 여론일 텐데.

프로야구는 어느 측면에서는 사회적 역할모델로서의 이미지를 갖게 됐다. 국민이 수긍하고 동경하며 호감을 갖는 살아있는 모범.

그런데 지금 유 총재의 ‘결단’을 보고나면 법과 원칙보다 일시적 여론몰이가 우선이고, 원칙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년 후, 5년 후, 10년 후, 100년 후 프로야구가 존재하는 한, 역사는 기록한다. 먼 훗날 무기한 실격처분이란 KBO의 법과 권위와 원칙이 어떻게 허망하게 훼손됐는지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다. 거듭하거니와 권위와 책임 그리고 파급력 측면으로 볼 때 KBO 총재가 ‘야구팬’ 수준이어서는 절대 안된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