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호기심천국] 1루 슬라이딩 효과 있다? 없다?

입력 2010-08-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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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들어가는 것보다 속도도 느리고 부상위험도 높다는 1루 슬라이딩. 그렇다면 프로야구 선수들은 왜 1루에 슬라이딩을 하는 걸까?

간발의 차로 결정나는 1루의 승부. 분명 뛰어 들어가는 게 빠르다고 하는데, 슬라이딩을 하는 타자주자도 종종 볼 수 있다. 과연 1루 슬라이딩은 실제적으로든, 시각적으로든 더 빠를까?


● 원론적으로 1루 슬라이딩이 더 느려…그래도 마음이 앞서서


5일까지 도루4위(27개)를 기록하고 있는 장기영(29·넥센)은 그 이유를 간단히 정리했다. “의욕이 넘쳐서.” 1루 승부는 평범한 선수로 남느냐, 일류 선수가 되느냐의 문제다. 한 시즌 10개의 내야안타로도 2할7푼대 타자는 ‘타격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3할의 경지에 오른다. 눈앞에 1루 베이스가 보이는 순간, 의식보다 먼저 반응하는 것이 몸.

하지만 심판의 입장은 다르다. 문승훈(44) 심판은 “서서 가다가 몸을 숙여야 하니 당연히 스피드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걸음이 느린 선수들의 감속률은 더 크다. 문 심판은 “장기영이나 이대형(27·LG) 같이 빠른 선수는 슬라이딩도 날카롭지만, 다른 선수들은 땅에 걸려서 들어오는 게 눈에 다 보인다. 살짝 ‘왜 슬라이딩을 했냐?’고 귀띔할 때도 있다”며 웃었다.

‘뛰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단거리육상전문가들의 증언도 일치한다. 한때 100m한국기록을 보유했고, 84∼86년 롯데 트레이닝 코치로 활약한 서말구(55) 씨는 “달리는 동작에서 조금의 신체균형변화도 감속요소다. 육상단거리에서도 탄력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오는 러닝피니시가 강조되는 추세다. 슬라이딩을 하면, 균형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예외도 존재, 슬라이딩이 더 빠른 3가지 상황



물론, 예외는 있다. 장기영처럼 “다들 슬라이딩이 느리다고 하지만, ‘어떤 때’는 그게 더 빠른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수도 있다. 그 ‘어떤 때’는 3가지 상황으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1루 베이스 앞에서 스텝이 맞지 않아 몸의 중심이 무너진 경우. 타자들마다 1루까지 내딛는 걸음 수는 일정하다. 빠른 선수의 경우 보통 15보 내외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순간 스텝을 맞추다 발이 다소 엉켜 감속이 되는 상황에서는 슬라이딩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1루 송구가 좋지 않아 1루수의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질 때. 타자주자가 슬라이딩으로 몸을 낮추는 편이 1루수의 태그를 피하기 쉽다.

세 번째는 1루 베이스를 밟는 마지막 스텝에서 점프를 길게 하는 ‘잘못된’ 습관을 가진 경우. 공중에 뜨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더뎌진다.

LG 유지현(39) 작전주루코치 역시 “마지막에 속도가 줄어드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꼭 스피드 문제 때문에 슬라이딩을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나 같은 경우 이유는 딱 하나. 부상 위험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1루 슬라이딩을 하다가 다쳐 자유계약(FA) 자격이 1년 뒤로 미뤄지는 악몽을 경험한 선수도 있었다.


● 슬라이딩 또는 쇼트트랙식 ‘발 들이밀기’보다는 육상 ‘런지피니지’가 시각적으로 유리

몇몇 선수들은 “(1루 슬라이딩이) 빠르지는 않지만, 빨라 보일 수는 있다”고 말한다. 일종의 ‘노력효과.’ 하지만 넥센 김성갑(48) 주루·작전 코치의 설명은 다르다.

심판은 공이 1루수 미트에 들어오는 순간과 타자 주자가 1루 베이스를 밟는 순간을 동시에 살펴 아웃·세이프를 ‘감각적으로’ 판단한다. 보통 야수의 송구는 1루수의 상체(가슴) 쪽을 향한다. 이 때 심판은 타자주자의 움직임까지 한 시야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타자주자가 같은 타이밍에 1루 베이스를 밟았다고 하더라도, 상체(가슴)가 뒤로 빠진 상태보다 상체를 앞으로 숙인 상태가 더 빨라 보일 수 있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에서 스케이트 날이 먼저 들어온 선수도 시각적으로 늦어 보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1루에서는 쇼트트랙의 ‘날 들이밀기’가 아니라, 육상단거리에서 런지피니시(lunge finish·가슴을 뻗는 동작)가 유리하다.

반면 타자주자가 슬라이딩을 한다면, 심판의 시선이 ‘위와 아래로’ 분산돼 정확한 판단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김 코치는 “1루에서 슬라이딩을 하거나 발을 쭉 내밀지 말고, 상체가 1루 베이스 위를 통과한다는 느낌으로 들어오라고 강조한다”고 했다.

심판들은 또 다른 애로 사항도 호소한다. 문승훈 심판은 “대구나 사직처럼 잔 흙이 많은 구장에서는 슬라이딩을 할 때 흙먼지가 많이 나 시야 확보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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