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 베이스볼 벤치스토리] 8년만에 고향팀 KIA 품으로 …“이제 다시 시작이다”

입력 2010-08-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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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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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신종길
휴식일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구단이었다. “사무실로 와라.” “무슨 일입니까.” “트레이드다.” “KIA 아니면 안 가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축하한다. 너 광주로 간다.”

신종길(27·KIA·사진)은 잠시 멍해졌다. 광주 대성초∼무등중∼광주일고. 광주에서 나고 자란 그였다. 롯데에 지명 받아 처음으로 고향을 떠난 2002년부터, 그는 늘 광주를 그리워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어요. KIA 유니폼을 입고 단 한 경기라도 더 나가는 게 제 소원입니다.” 지금 입고 있는 붉은 유니폼이 그에게는 ‘꿈’ 그 자체였던 것이다.


○먼 길을 돌아 고향팀 KIA 품으로

고교 2학년 때 오른 손목 수술을 받았다. 친구 이대형(LG)과 자웅을 겨룰 만큼 발이 빨랐는데, 2차 6번까지 지명 순위가 밀렸다. 그리고 프로 입단 첫 해를 재활군에서 보냈다. ‘1년만 참고 잘 해보자’ 다짐했지만, 1년 후 FA 이상목의 보상 선수로 뽑혀 한화로 갔다. “스트레스 때문에 이적 초기에 살이 6∼7kg 빠졌어요. 아직 어릴 때라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타 선수들의 부상에는 세간의 관심이 쏟아진다. 하지만 남몰래 수술 받고 재활하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선수들이 훨씬 많다. 그도 그럴 뻔 했다. 이적 직후 다시 손목을 찢고 뼛조각을 제거했다. 팔에는 시커먼 수술 자국이 길게 생겼고, 마음에도 그만큼 깊은 상흔이 남았다.

대전에서 공익 근무를 하던 첫 1년은, 그래서 푹 쉬었다. ‘이렇게 쉬어도 계속 아프면 그만 둬야지.’ 사실상 자포자기였다. 그러다 근무지를 광주로 옮겼다. 모교인 광주일고 운동장에서 보강 운동을 시작하자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처음으로 ‘나도 잘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그런데….” 2007 시즌이 시작됐는데도 한화에서 선수 등록을 차일피일 미뤘다. 2군 경기조차 뛸 수 없었다. 아픈 손목을 테스트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면 풀어 달라’고 요구했다. “큰 미련도 없었어요. 그냥 내가 야구선수니까 고향에 가서 마지막으로 한 번 뛰어봐야 한이 남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하늘이 도왔다. 8년 만에 비로소,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향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등야구장에 가면, 왼쪽 담장 너머에 신종길 가족이 사는 아파트가 보인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로 이사한 집이다. 더불어 그의 야구 인생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남다른 각오가 있을 것 같아 넌지시 물었다. “안타 하나를 쳐도 광주에서 치고 싶어요.” 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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