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역사에 11명만이 ‘야구의 전설’로

입력 2012-05-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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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이종범의 은퇴식 때 KIA 선수들은 모두 ‘이종범’과 ‘7’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LG전을 치렀다.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으면서 ‘바람의 아들’은 팬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작은 사진은 이종범이 자신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으로 선포되자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 동아닷컴DB

■ 이종범 은퇴로 돌아본 영구결번 사례


1986년 OB, ‘익사’ 김영신 1호 지정
해태 선동열 日진출로 자연스레 결번
롯데, 작년 최동원 타계에 결번 선물


‘바람의 아들’ KIA 이종범(42)이 26일 자신의 야구혼이 깃든 광주구장에서 공식적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KIA 구단은 이날 성대한 은퇴식을 열면서 이종범의 또 다른 이름이나 다름없는 등번호 ‘7’을 영구결번으로 선포했다. 이종범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11번째 영구결번 선수가 됐다.

영구결번은 그 자체로 선수에게 가장 큰 영광의 훈장. 이젠 누구도 7번을 달 수 없기 때문이다. 10년 후에도, 100년 후에도, 타이거즈가 존속하는 한 7번의 전설은 영원히 기억될 수밖에 없다. 이종범의 영구결번을 계기로 한국프로야구에서 역대 영구결번 사례를 살펴본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은 OB 김영신의 54번. 그러나 좋은 일은 아니었다. 국가대표 출신의 김영신은 1985년 동국대를 졸업한 뒤 OB에 입단했지만 이듬해인 1986년 한강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OB는 김영신을 애도하기 위해 구단 차원에서 영결식을 연 뒤 영구결번까지 지정했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1996년, 해태는 ‘국보투수’ 선동열이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로 진출하자 누구도 18번을 달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선동열이 해태로 복귀하면 18번을 달 수 있었지만, 일본에서 은퇴함에 따라 1996년부터 타이거즈의 18번은 영구결번이 됐다.

선수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구결번이 공식지정된 것은 사실상 LG 김용수의 41번이 처음이다. LG는 팀 간판스타인 김용수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100승과 200세이브를 달성하자 1999년 4월 영구결번 선포식을 했다. 김용수는 이듬해인 2000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두산은 1997년 은퇴식을 한 박철순의 21번을 5년이 지난 2002년 영구결번으로 처리했고, 삼성은 1997년을 끝으로 은퇴한 이만수의 22번을 팬들의 요구에 따라 2003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한화는 2005년 장종훈의 35번을 시작으로 2009년 정민철의 23번, 송진우의 21번을 은퇴식 때 차례로 영구결번으로 선포했다. 삼성은 2010년 양준혁의 은퇴식에 맞춰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처리했고, 롯데는 지난해 전설적인 투수 최동원이 세상을 떠나자 11번을 영구결번으로 만들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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