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미손’ 이운재가 17일 기자회견에서 선수생활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운재가 17년 간 그라운드 위에서 상대 슛을 막았던 자신의 두 손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seven7sola
■ 현역은퇴 기자회견 “이젠 말할 수 있다”
“선수시절 내내 살 때문에 스스로 채찍질
오르는 것 보다 정상 지키는 게 어렵더라”
‘거미손’ 이운재(39)는 17일 서울 삼성동 라마다호텔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K리그 유일의 골키퍼 MVP(최우수선수), 센추리클럽(A매치 100회 이상 출전) 가입 등 숱한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건 모두의 든든한 성원”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 축구 최고의 수문장인 그는 1994미국월드컵을 시작으로 2002한일월드컵과 2006독일월드컵, 2010남아공월드컵 등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희망하는 ‘꿈의 무대’를 4차례나 경험한 베테랑이다. A매치 132경기에 출격해 114실점만 허용, 0점대 방어율(0.86골)을 기록한 그도 선수 신분으로 맞은 마지막 날에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영광을 만든 건 8할이 살?
때론 아픔도 있었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던 성공적인 삶. 물론 마흔을 목전에 둔 최근까지도 뛸 수 있었던 한 가지 비결이 있었다. 바로 ‘체중’이다. 이제야 웃고 말할 수 있어도 그는 치열했던 ‘살과의 전쟁’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가능했다고 털어놨다.
언젠가부터 급격히 불어난 체중에 주변에서는 “축구선수가 제대로 운동을 하지 않는다”며 손가락질을 했고, 현역 말미를 보낸 전남에서는 아예 “살 빼지 못하면 설 자리가 없다”는 충격적인 얘기도 들었다. 그래도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항상 체중 탓에 울고 웃었다. 늘 살찌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에 꾸준히 뛸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몸에) 100% 만족했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준비할 수 있는 노력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늘 살이 화두가 되다보니, 이에 대해 어떤 말을 해도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물만 먹고 살이 찐다? 그건 불가능하다(웃음). 당분간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지도자를 하면서 살이 빠지면 그럼 또 뭐라 할 것 아니냐.”
이운재는 후배들에게 따스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것보다 정상을 지켜내는 게 훨씬 어렵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 장갑을 물려받은 후배 정성룡(수원)에게도 일찌감치 이 말을 건넸다. 모두 경험에서 우러난 메시지였다. 본인조차 예상할 수 없었던 2002년, ‘해도 해도 안 되면 태극마크를 반납하겠다’는 각오로 임한 결과 이운재는 1인자가 됐다. 그리고 실점뿐 아니라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늘 앞을 보며 묵묵히 가면 노력의 빛을 보기 마련이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꼭 돌아온다는 걸 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공격수가 골 넣는 매력이 있다면 우린 골을 막는 희열이 있다. 넣는 사람도, 막는 자도 필요하다.”

후배 정성룡(수원)이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떠나는 선배 이운재(오른쪽)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격려하고 있다. 박화용 기자
남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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